삼개월전 넘어져 다친 다리때문에 많이 걷는 3~4주동안의 해외여행에 자신이 없다.
계단과 경사진 면을 내려가려면 약간의 통증과 함께 발 뒷쪽이 땡겨 온다.
또 아흔 두살이신 장모님을 모시고 온지도 두달이다.
그동안 몇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갔다오셨다가 소생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가 힘들어해 오래전 부터 계획했던 올봄의 중동 여행은 포기하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편하다.
아내를 혼자두고 여행한 것이 한두번 아니나 이번에는 도리가 아닌것 같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작년 계획했다 못한 편지 정리를 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초등학교시절 서울로간 친구와 고교 시절 주고 받았던 편지며 군대 시절 편지가 있다.
대학 졸업후 방황하던 친구의 편지며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친구가 75년 사막 건설 현장에서 보내온 편지들도 있다.
젊은 날의 기쁨과 고뇌가 배어있는 편지들이다.
편지들을 읽어보는 동안 기억에서 조차 없었던 일들이 편린 처럼 떠오른다.
그중 군대서 받은 편지들이 특히 많이 남아 있었다.
군생활 동안 가장 많은 위로가 되었던 편지들이다.
학교에서 보낸 친구.같이 군복무를 하며 서로를 격려했던 친구들이며 .
열기가 쏟아지는 월남 십자성 부대에서 보내온 후배의 편지들도 있다.
나중 ROTC장교가 되어 열심히 전방에서 사병에게 편지를 보내준 친구도 있다.
대학음악 감상 서클 회원들의 위문편지도 더러 더러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인 회계사 공부를 한다는 친구의 결의에 찬 편지며.-결국 그는 뜻을 이루고 나중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에 위스콘신으로 유학하였다가 돌아와 젊은 날 요절한 친구의 편지도 있다.
장손으로 자식넷을 부인에게 남기고 왜 내가...절규하던 친구여.
글씨가 눈에 익숙한 그녀의 편지도 있다.
군시절동안 서로 차분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헤어지고만 그녀.
서로 노력해 보라는 그녀 친구의 아름다운 설득의 편지도 있다.
그녀는 지금도 독신이다.
안양에서 보내온 두통의 편지 이름이 낯설다.
바닷가에 친구들과 놀러 왔다가 같은 고향이라는 나를 우연히 만나 반가웠고 첫 근무달이라 돈이 없어 군인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지 못했다는 것.
안양에 오면 들려달라는 것과 자신은 외롭다며 좋아 하는 여인이 있다면 좀 더 과감해 보라는 적극적인 여자의 구애 편지다.
그녀의 이름조차, 아니 그 일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먼추억이다.
이대 다니던 사촌 여동생의 편지도 있고 독일 간호사로 갔던 사촌 여동생의 편지도 있다.
친구 여동생과 함께 영문과를 다니며 글을 쓰던 문학적 소양이 깊은 영문과 여학생의 편지며.
'무슈리'로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는 단편 습작이었고 나는 그녀의 독자였던 셈이었다.
특히 눈내리는 겨울 ,긴방학 동안 자신도 외로움에 젖을 때 외로운 병사를 위로해주고 싶어 했던 그녀의 편지에 감사한다.
언제 휴가와 데이트 신청하면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그녀의 편지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지금은 의사 부인이 되어두 딸을 모두 출가시킨 할머니가 되었다.
아버지,어머니의 체취가 남은 편지와,해외 근무시 잠시 떨어져 있던 당시 아내와 아이들 편지외 모두 다 버렸다.
생각하면 순수함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시간들이 결국 성장통을 앓는 통과 의례였다
추억도 이제 머리속에서 조차 희미해져가는 더 이상 붙들수 없는시간에 서있다.
편지들을 모두 버리고 나니 과거의 추억도 모두 마음의 짐이었음을 알았다.
헤어진,혹은 죽은 연인의 편지와 사진들을 태워 모두를 망각의 저시간으로 보내려는 의식처럼 나도 짐을 내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