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곳 저곳 헤메다보니 짠돌이 대한 얘기가 동영상으로 나와 있다.
커피는 자판기 커피만 마시고 김밥집에 자주 드나들고 버스대신 걸어가자는 남자친구 얘기다.
여자 친구의 친구들을 카페에 불러 놓고 자기 커피값만 내놓고 나간 남자친구
하이라이트는 300일 기념 커플링을 150,000에 사와 5,000원 깍은 한개값 70,000원을 달라는 대목이다.
웃음이 난다.
절약가가 아닌 지지리궁상이라는 말로 엉성한 TV 개그보다 훨씬 잘 만든 작품이다.
사실이든 잘 연출된 이야기든 실제 그런 사람이많다는 것이다.
절약으로 말하자면 우리 집안에 사실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옛날고조 할아버지,할머니께 큰 뒷박(서너되 사이즈다)에 쌀을 담아 숫가락 두개 꼿아 주고 살림을 내주었다고 했다.
근검 절약이 생존의 방식이긴 했어도 더 지독히 하루 두끼의 끼니를 잡수시고 겨울철엔 방바닥이 미지근 하게 장작을 서너개피만 때셨다 하셨다.
밤에는 목화씨 기름으로 만들어 끄름이 많이나는 등잔불아래서 일을 하셨다 한다.
한 밤 일하시다 허기가 지면 장투가리 바닥을 긁어 찝질한 소금기가 벤 숫갈로 입맛을 다시고 물한모금 마시고 일을 계속하셨다하셨다는 것이다
목화 농사를 지어 좋은 것은 내다 팔고 조악한 것들은 모아 집에서 사용하셨다 한다.
마침내 목화,인삼 농사등 근검절약에 힘입어 돈만 모이면 땅을 사곤 해서 증조부를 거쳐 할아버지대에 이르러서는 천석꾼으로 불리웠다.
아버지께서는 일찌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마름들과 도지 받기위해 다니실때 정확히 쌀만 1,800석이었다고 하니 벼로 3,000석이다.
천석꾼으로 불리울만했다.
근검 절약이 생활 신조가 되어 증조 할아버지때까지 비단 옷을 입은 적이 없고 아버지대에 이르러서도 (살아 계시면 96세시다)비단 옷은 커녕 옷도 2-3년은 더 입게 크게 입어야 하셨다고 들었다.
여름 참외도 한개 이상 못먹게 할아버지께서 엄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부유했던 집안에 쓸만한 골동품이 없었던 것은 사치를 싫어 하신 할아버님의 생활 신조때문이라고한다 .
그나마 있던 옛 물건들은 6.25를 거치며 또 도둑을 맞고 말아 장손격인 큰집의 사촌 형님 집에는 증조모께서 시집오실 때 가시고 오신 오동나무 이층장과 할머니께서 쓰시던 화장 거울,화로등이 전부다.
근검 절약의 정신은 누가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면면히 내려와 집안에 사치한다던지 돈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다.
모든 자손들이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장투가리 긁으셨다는 고조 할머니 얘기를 아버님이나 작은 아버님이 하실 때 속으로 이번에 한번 더하시면 백번하며 되뇌이던 나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부모님 세대는 모두 돌아가시고 조상들의 근검 절약 이야기를 내가 해줄 차례가 되었다.
절약과 검소와 인색 사이에서 인색하지 않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왔다고 생각한다.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영상 주인공의 남자친구도 절약과 지지리궁상 사이에서 이제는 좀 더 현명한 쪽을 선택해야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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