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수제비 이야기

Jay.B.Lee 2009. 2. 15. 05:09

 

 

 

 

얼마전 안타깝게 자살한 여배우는 어린 시절  가난하여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전후 세대도 아닌데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때론 우릴 슬프게 한다.

전쟁후 밀가루 배급을 받아 집에서 해먹을 수 있었던 것이 손 칼국수요 그나마 허기를 때우려  금방 쉽게 해먹을 수 있던 것이 수제비였다.

때거리가 없었던 사람들이 냉장고가 어디 있으랴.

하루전 밀가루에 소금을 넣어   치대어 냉장고에 두었다가 수제비를 하면 부드럽건만 배고픈 이들에게 그런 사치가 있을 리 없다.

(밀가루에 찹살가루를 섞어 식용유를 넣어 반죽하면 더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어머니의 솜씨에 따라 때로는 부드러운 수제비를 먹거나  아니면 두껍게 빚어진  수제비로 인해 뻑뻑한 맛을 참아가며 먹어야 했던 수제비다.

수제비는 가난했을 당시를 연상시키는   음식이라 그런지 한끼의 식사로 파는 곳이 드물었다.

수제비가 하나의 음식으로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삼청동 수제비 집의 공이 크다.

오래전 계동에 근무했던 관계로 삼청동의 맛집 및 인사동의 유명 음식점을 다니는 동안 삼청동 수제비집도 몇번 가보게 되었다.

확실히 들깨를 갈아 넣어 새알처럼 만든 수제비는 별미였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수제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의도로 직장을 옮겨 근무하는 동안 칼국수,수육,수제비를 잘하는 집이 있었다.

칼제비(칼국수+수제비)는 안만드는 순수한 집이었다.(지금은 찾아 갈수 있어도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보통 대여섯명의 직장 동료들과 그곳에 가는 날엔 밀가루 음식이 식사로 부실하다는 생각에  돼지고기 수육 소자 하나와 소주 한병으로 한잔씩 애피타이저로 먹고 칼국수나 수제비를 먹었다.

어느 날 수제비를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수제비하는 아주머니가 바뀌었냐고 묻자 주인 아주머니의 눈이 동그래지며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수제비 담당 아주머니가 일이 있어 그날 휴무라  다른 아주머니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는데  내 입에는 분명히 호돌호돌한 수제비에서도 부드러운을 차이를 느낄수 있었다.

흔히 민물 매운탕집에 가면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다고 수제비를 넣어 준다.

그러나 그 수제비는 자신의 역할을 했을런지 몰라도 수제비 본연의 맛을 즐길수 있는 수제비는 아니다.

선릉 앞에 자리한 메기 매운탕집에 가면 한구석에 덕용 라면 사리와 잘 치대 놓은 밀가루 덩어리들이 비닐 장갑과 함게 놓여 있다.

손님이 직접 원하는 만큼 만들어 재미삼아 넣어 먹으란 얘기다.

간혹 여름날 수제비를 먹고 싶을 때 안사람에게 부탁하여   멸치국물을 우려 만든 수제비를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먹다가 고추나  고추장을 넣어 먹으면 칼칼한 맛이 좋았다.

그러다가 맛있는 수제비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은 보리밥을 먹으러 하남에 가서였다.

하남과 서울의 경계선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식사를 하러 하남으로 곧잘 갔다.

올림픽 대교에서 하남 방향으로  산등성길을 넘어 고골 사거리로 내려가다 보면 음식점들이 좌우로 즐비하다.

왼편으로 있는 청국장 집을 들어 가다 발견한 보리밥집이 "보리향"이다.

간판은 보리밥집 "보리향"이나 이집의 동등한 주메뉴는 보리밥,코다리찜 그리고 수제비다.

수제비 이름은 그냥 수제비가 아닌  "털내기 수제비"다.

털내기 수제비의 유래가 이랬다.

북녁 강변에 살던 사람들이 민물 새우와 야채를 넣어 만들어 먹던 수제비라는 것이다.

뭐 없이 살던 사람들이 있는 재료, 없는 재료  털털 다털어 만들어 먹었겠지.

그래도 이름이 정겹다.

지금은 말린 새우와 배추 시레기를 넣어 커다란 도기 항아리 냄비에 끓여 내오면  국자로 각접시에 떠 먹으면 된다.

국물에는 된장과 고추장이 적당히 섞여 *담담하면서 시원하고 약간 매콤한 국물맛이 난다.

간혹 칼칼한 맛이 느껴지는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저민  청량고추가 들어가서다.

내 입뿐 아니라 여러사람 입에 잘 맞는 것을 보니 수제비를 정말 맛있게 하는 집이다.

보통 네명이  갈 때는 수제비 2인분에 코다리에 공기밥이나  보리밥을 2인분을 시켜 나눠먹는 것이 별미를 즐기는 방법이다.

1인분은 만들수 없고 오로지 2인분의 수제비만을 끓여 꼭 짝수로 주문해야 한다.

추가도, 삼인분도 안된다는 주인의 횡포(?)다.가격은 2인분에 12,000원이다.

그래도 수제비 가격이 2인분에 만원이었을 때는  눈감아 줄수 있었는데.....

가끔 옛맛이 그리울 때는 한그릇의 수제비를 먹기위해  또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는 원로  교수께서는  젊은 연예인들이 나와 맛집 탐방시 음식맛을 보면서 너무 "담백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해 하셨다.

담백하다면 실제 맛이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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