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 되고 애호박이 달릴때면 어머님은 호박을 넣은 칼국수를 잘 끓여주셨다.
어린 시절 나는 찐방과 잔치국수를 잘 못먹고 만두와 칼국수를 잘먹던 괴상한 식습관 을 가졌었다.
넓고 둥근 상 위에서 오래 치댄 밀가루반죽을 밀방망이로 이리저리 밀어가며 밀가루를 뿌려 넓게 편 다음 중간이 약간 패인 넓은 나무 도마위에 올려 놓고 네모난 칼로 숭숭 써시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 다.
나이가 들어 칼국수의 맛을 더 느끼게 된 것은 삼선교 국시집에서다.
간판 조차 "국시집"인 그곳은 주차장이 필요 없을 만큼 넓은 골목길에 자리 잡았다.
"장군의 아들"을 집필하였고 일찌기 식도락가로 이름을 날리셨던 故 백파 홍성유씨의 "맛있는 집666" 에 등장하였고 "맛있는 집 999"에도 등장하였다.
전 김영삼 대통령께서 왔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도 점심에 가면 유명한 기업인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던 곳이다.
접대문화가 많던 70년대 술먹은 다음날 깔깔한 목구멍에 술술 넘어가는 칼국수가 제격이었다.
이집은 한 때 불친절하기로 유명해서 오죽했으면 홍성유 선생님께서 소개 말미에 "불친절한 것은 각오 할것 "이라고 쓰셨을까.
점심 시간을 지나 가면 고아놓은 양지머리 고기 국물이 동이나 한정된 그릇만 팔았다.
손님들이 늦게 칼국수를 찾으면 "없어요"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해 먹고있던 우리가 무안했으니까.
저녁엔 술손님을 위해 생선 모듬전과 문어회를 안주로 내어 놓았는데 안주역시 무한정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예약 손님에만 한해서 팔았다.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고 재고를 남기기않겠다는 영업방침이다.
그냥 무작정 가서 저녁에 칼국수 한그릇 먹었으면 다행이지 소중 곁들여 안주 생각이나 주문했다가는
"예약했어요,예약 하지 않았으면 없어요"하고 핀잔을 맞기 일쑤였다.
"저 죄송하지만 오늘은 다 떨어져서 안되겠는데요"
"예약손님만 준비해서 안주가 안되겠네요,죄송합니다"
이런공식적이고 교과서 같은 대답을 듣기란 요원한 곳이었다.
그래도 음식만은 양심껏 틀림없이 만들어 손님이 끊이지않고 번창해서 건너집도 사고 계속 확장을 했다.
건너집에서 국수를 먹고나온 누가 그랬다 .
"백곰표"밀가루 포대가 잔득 쌓여 있더라고,
몇년간의공백기를 거쳐 후 안사람과 그곳을 찾았을 때는 아들인지 며느리인지 젊은 분들이 운영하고 있고 친절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간헐적으로 찾은 그곳엔 50미터위에 비슷한 국수집이 하나더 생겼고 맛도 비슷해 국시집 종업원이 나와 차린것은 아닌지 짐작을 해본다.
모범 음식점의 공인 간판이 그집에도 있다.
삼선교 국시집외에 혜화 칼국수가 유명하다고 들었으나 마음뿐 가보지 못하였다.
1979년 계동에 휘문 고등학교 부지에 현대 빌딩이 들어서며 우후죽순으로 주위가 온갖 음식점으로 먹자 타운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값이 치솟기 시작하자 그 동안 공사장 때문에 먼지 날린다고 불평하던 동네사람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현대 빌딩 별관 뒤쪽으로 비원 칼국수가 생겨 삼선교까지 갈 수고를 덜어 가끔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맛은 삼선교 국시집을 흉내를 내었다.
그러나 기름 많은 고기를 사용, 삼선교 국시집과는 도저히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곳은 일찍 자리를 잡으면 한 국수가 익을 동안 15분정도 기다려야 얻어 먹을 수 있었는데 한번은 먼저 온 우리 탁자를 재끼고 다른 탁자로 국수가 먼저 갔다.
"아주머니,만드는 걸 기다릴수 있지만 그래도 온 순서대로는 주셔야지요"
"그럼 소리를 질러야지요,소리를! "
젊잖은 사람들은 국수도 얻어 먹기도 힘든 시기를 살았다.
명동의 명동 칼국수를 모르면 간첩인 시절도 있어 누구나 들리던 곳이다.
그러나 나일 먹어가며 닭고기 가 든 명동칼국수보다 멸치로 국물을 낸 칼국수나 고기국물이 든 칼국수를 선호하는 입맛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던 중 압구정동 현대 백화점 대각선 방향에 안동 국시집이 생겨 자주이용하게 되었다.
콩가루가 들어간 안동 국수는 같은 칼국수라도 나에게는 신선한 음식으로 다가왔고 부추김치와 함께 먹는 맛에 익숙해질 무렵 무슨 사정이 있어 선지 섭섭하게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던중 우연히 발견한 왕십리 교통회관 부근에 있는 칼국수 집이다.
일층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복도에는 마대 푸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집을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멸치 냄새가 배어오듯 순순히 큰멸치로만 국물을 내던 곳이다.
점심,저녁 항상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 집은 매운 칼국수와 매운 칼제비(칼국수+수제비)가 주 메뉴였는데 나는 칼국수만 먹었다.
칼국수면 칼국수,수제비면 수제비지 반반씩 먹는 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몇년전 그칼국수 집이 문뜩 생각나 안사람과 어렵게 지하철에서 내려 찾아갔을 때 업종이 다른 간판이 우릴 맞았다.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기면서 여의도의 음식맛에 익숙해져 갔다.
청국장집,유도회관 앞의 일식집,북어국집,보신탕집,수제비집,콩국수집,일년에 한번 사극에 꼭 출연하는 탈렌트김종결씨의 고기집(고기가 맛없으면 교환이 되는 유일한 집이다)등 많은 맛집을 섭렵하는동안 칼국수집을 발견했다.
이집도 매운 칼국수 ,칼제비전문 집이었다.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국수집이다.
그러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맛 때문에 곧 질리고 말았다.
한동안 명동 부근을 갈일이 있으면 외환은행 가까이 있는 곰국시집을 많이 이용했다.
곰국시집은 국시보다 전골국수가 더 맛있는 집이다.
곰국시는 먹고나면 2%부족한듯하고 마늘 김치가 너무 강렬해서 좀 피하다 보니 소원하게 되었다.
그러다 모임으로 알게 된곳이 테헤란로 상록회관 빌딩 뒤에 위치한 "가연"이다.
칼국수가 주종으로 낚지 볶음,돼지고기 수육,녹두 빈대떡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 집이다.
가정집 을 개조 하여 분위기가 좋고 한결같은 주인 아주머니와 종업원들이 칼국수의 변함 없는 맛처럼 반가운 곳이다.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우선 칼국수의 양이 절대 부족하지 않게 많은 곳이다.
직접담근 김치와 부추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가격도 착해서 맛 대비 절대 불평할 수 없는 곳이다.
봉은사 부근에도 전 장관 부인이 한다는 "삼성국수"집도 많이 드나들었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뭐라 탓할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집은 국수보다 만두 전골과 만두국에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싶은 곳이다.
칼국수는 뭔가 항상 깊은 맛이 모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차를 타고 집에오며 올림픽공원을 돌다보면 평화의문 부근에 간판이 보이던 칼국수집.
모처럼 벼루고 들린 그집에서 안사람과 내앞에 칼국수 두그릇이 놓인 순간 만두를 시켰어야했을 것을 후회가 되었다.
확 코끝을 스치는 누린내 때문이다.
좋은 고기와 뼈를 안쓰고 싼 잡뼈를 많이 쓴다는 증거다.
다시 삼선교의 국시집이 그리워질 무렵 소개받은 곳이 된곳이 포이동 "소호정"이다.
소호정은 안동국시 스타일이다.
기름 없는 진한 양지머리 국물,부드러운 면발,양도 배부르다.
반찬으로 배추김치와 부추김치그리고 한장 한장 양념이 들어간 살짝 쪄낸 들깻잎이 이집의 특징이다.
강남에 자리한 탓에 칼국수가 생각날 때 그집을 찾는다.
칼국수 가격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곳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음식을 만든 정성과 맛을 얘기하자면결코 비싼 곳이 아니다.
얼마전 불로거가 추천한 칼국수집 사진이 맛있어 보여 큰 맘 먹고 남대문 시장 칼국수집을 찾았다.
이집의 특징은 칼국수가 나오기전 두어 수저 양의 비빔 냉면을 스텐레스 그릇에 공식적인 "에피타이져"로 준다.
넓게 썬 칼국수가 푸짐해 식사시간에 관계없이 장보러 나온 사람들로 항시 북적인다.
바닥엔 휴지가 널리고 아예 주인은 앞에 돈가방을 앞치마처럼 두르고 돈을 받는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음식을 얻어먹는 다는 것은 무리다.
가격도 음식의 질과 청결,서비스를 고려할 때 너무 비싼곳이다.
나는 칼국수라 이름붙어 동네옆의 양심적인 음식점"안면도 바지락 칼국수'집이나 별로 음식 자랑을 할 수 없는 고향, 청주에서 얼큰한 "버섯 칼국수'도 먹어 보았다.
내가 생각하던 맛과는 거리가 있다.
이제 한 때는 그렇게 좋아 하던 칼국수집을 찾아 다니는 식도락 기행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가까운 방이동에 생긴 "소호정' 직영점에 들리면 후딱 한그릇의 칼국수로 족할수 있어서다.
그래도 가끔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칼국수가 그립다.
그렇다고 안사람에게 슈퍼에서 생 칼국수를 사다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어머니의 맛을 내지 못할 터이다.
추억으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칼국수 맛을 어떻게 흉내낼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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