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군대 이야기>
70년 1월 소사에서 겨울을 맞았다.
겨울이야 같은 겨울이나 군대 와서 처음 맞는 겨울이었다.
나는 *3X사단 10X연대 1대대에서 연대본부 인사과로 전출 명령을 받아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다.
70년 1월 초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인사과에 연탄난로를 피워야 했고 가끔 제일 졸병인 군번 12,000,000번인 이병을 도와 무연탄 창고에 가서 무연탄에 황토와 물을 적당히 넣고 개어 함께 들고 와야 했다.
특이한 군번을 가졌던 그는 지금 어디서 있는지.
사단 인사부에서 군번이 아주 좋다고 어디든지 본인이 원하는 데로 보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고 했다.
소위 "와르바시" 군번(군번이 11로 나가 젓가락을 뜻함-논산훈련소와 달리 *총번을 받은 예비사단 출신은 잘 모를 수 있다)인 나와는 격이 틀린 군번이었다.
낯선 선임들과 후배와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입 신고 시 성냥개비를 들고 하는 총검술을 보아야 했고 가끔 심심해하는 내무반장 지시로 중대 약학과 재학 중 입대한 김 일병과 내무반에서 유단자들의 태권도 자유 대련(겨루기)을 보여주어야 했다.
근무 중대 (인사과를 비롯 작전, 통신, 군수과 소속) 내무반 옆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간혹 선임들이 상병들을 야간에 집합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빠따"를 맞고 오는 눈치지만 일병들을 집합시켜 화풀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었다.
" 야 모두 잘 좀 하자"그말 한마디뿐이었다.
어느 날 상병들 집합이 있었는데 "*소원 수리"사건 때문에 P병장이 집합을 시킨 기억이 난다.
경희대 졸업 후 입대한 P병장은 작달막한 키에 피부가 어떻게 흰지 저녁이면 구레나룻이 검게 자라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이곤 했다.
털이 무척 많고 경상도 출신이라 옛날 왜구가 뿌린 씨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최고참이었다.
늘 유쾌한 성격을 지닌 P 병장도 그날따라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야, 우리만 라면 끓여 먹었냐 , 너희들도 불침번 서며 끓여 먹었잖아! 그렇다고 치사스럽게 소원수리로 고자질을 해, 치사한 놈들!"
사단에 불려 가 조금 곤욕을 치른 모양이었다.
당시 내무반에서 불침번 근무 시 일병들은 감히 생각 못하고 상병들이나 병장 선임들은 가끔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내 생각에도 불침번 시간을 죽이는데도 그만이었다.
라면을 끓이고 난로에 데운 물에 발을 씻고 나면 한 시간은 금방이다.
선임들이라고 그넨 취사장에서 얻은 김치에 마가린을 넣고 김치를 볶아 먹곤 했다.
아침에 기름 묻은 플라스틱 식판을 닦아야 하는 상병들 중 애로 사항을 적는 소원수리에 누가 고자질을 한 것이다.
내무반 뒤에는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물이 있었다.
아무리 군인이라도 손이 아리아리한 찬물로 비누도 없이 수세미로 식기를 깨끗이 닦아 놔야 하는 일병이나 상병들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군번으로 보아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한 바가지 얻는다는 것은 언감 생심이었다.
그날 밤도 *유격 조교 소대와 같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선임과 상병들 간에 또 *"한 따가리" 행사가 빠질 수 없었다.
며칠 후엔 선임 상사가 연대 밖에서 기르는 중 돼지가 우리에서 나와 "짬밥 통"에 빠져 죽었는데 우린 때아닌 삶은 돼지고기를 포식해야 했다.
우린 돼지를 변상하기 위해 회식을 해야 했고 연대장의 후생 사업을 위해 애쓰고 있는 주임 상사를 십분 이해해야 했다.
돼지값은 일방적으로 봉급에서 공제한다고 하나 입이 즐거운 우리로서는 불평할게 못되었다.
특히 입심 좋은 병장님께서 주임 상사에게 좋은 가격으로 협상해 왔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혹 다음에도 돼지가 우연히 구정물 통에 빠져 죽기를 바랐다.
이럭저럭 새 환경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소원수리:
군 장병들의 애로 사항을 수집하여 개선하고자 훈련소나 부대에서 정기적으로 장병들의 서면 보고를 받았다.
훈련소에서는 소원수리에 대해 말썽이 있는 사항들을 보고치 말도록 압력을 받았으며 기간 부대에서는 알아서 해야 했다.
개선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어서 나중에는 형식적인 행사로 여겨질 뿐이었다.
* 3X예비사단:
구도로인 경인 가도에서 깊숙이 자리 잡아 사단 정문까지 가려면 1킬로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워낙 산과 산으로 막혀 외부로부터 차단된 곳이어서 총살형이 집행되던 곳이기도 하다.
예비 시단인 그곳은 1968년 1.21 이후 북한의 124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습격 후 준 전투사단으로 변했다.
그 옛날 "도끼로 이마까"를 유행시킨 흉악 살해범 <고재봉>을 총살한 곳이기도 하다.
*총번:
논산 훈련소와 달리 예비 사단에는 간혹 신병 훈련소가 있었다.
논산 훈련소와 달리 복잡해 보이는 군번을 가진 그들을 총기 번호 같다 하여 논산 훈련소 출신들은 예비사단 훈련소 출신들을 얕잡아 보았다.
*유격조교 소대
이 유격 조교 중에는 우리의 친애하는 고교 동기생 최 XX과 한식당에서 한 솥밥을 먹었던 조교들이 있어 후일 큰 덕(?)을 보았다.
사단 내에서 지나가던 중사에게 경례를 안 한 "괘씸죄"(군 풍기 위반)로 적발되어 반년 후 하사관 교육대에 끌려가 한 달간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았는데 유격훈련 시 봐준 편의 때문에 훈련이랄 것도 없었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 따가리-군용 반합 뚜껑이나 뚜껑 밑에 있는 작은 반찬 그릇을 이르는 것으로 군대인 만큼 여러 가지 은어적인 의미를 지녔다.
한 따가리 했다면 술(막걸리)을 마셨다는 의미도 되고 모두 엎드려 뻗혀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단 의미도 되었다
'청춘시절, 군대,군에서 받은 편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미도 사건 (0) | 2008.11.01 |
---|---|
1968년1.21 청와대 습격사건 (0) | 2008.10.30 |
실미도 - 군대 이야기. (0) | 2008.10.28 |
W의 비극(2) (0) | 2008.10.11 |
Y의 비극 (0) | 2008.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