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첫번째 터키 여행(2008)

콘야(Konya)

Jay.B.Lee 2008. 7. 13. 21:58

 

"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돌려준다.

어디 갈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 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 하리라."

      -*젤라레띤 루미-

내가 젤라레띤 루미의 이름을 처음 대하게 된것은 유시화시의 잠언 시집"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을 읽고  나서다.

25,600여개의 시를 남긴 회교주의 신비시인으로만 소개된 그가 회교도의 한 종파가 된 메블레나(나의 구주란 뜻)신비주의 종파를 창시자임을 알고  콘야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

콘야(Konya)는 "양의 가슴"이란 뜻을 가진 말로 BC 18,000년전 호수였던 지역이 물이 말라 평원이 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이고니온"으로 불리워지던 곳으로 터키의 최대 관광지 카파도키아에서 230키로 떨어져 있다.

페케지 투어로 카파토키아에서 안탈랴를 가는 단체 관광 버스들은 이 콘야를 들려 마블레나 박물관을 거쳐간다.

가는 길에 많이 보여준다는 의미다.

 자유 여행자들은 특별히 젤라레딘 루미에 관심이 없다면 이곳은 그냥 지나기가 일 쑤다.

지중해 안탈랴나 올림프스,페티예에서 보트 투어나 페라글라이딩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훨신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메드의 생활과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본받아 청빈,검소한 생활을  하여 "이슬람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것이 <수피즘>이고 메블라나는 수피즘을 토대로 참선을 중시하고 봉사와 선한 생활을 강조하며 학자나 권력자 보다는 서민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 쉬운 교리를 전파했다.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든 차별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교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오라,오라.네가 누구든지 오라.이교도건 무신론자든 그 누구든지 오라"

이 아름다운 문구는 메블레나교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세마(선무의식)는 메블레나교의 명상 수행의 한 방법으로 수피댄스,세마댄스,마블레나 댄스등으로 불리운다.

이 세마 의식은 이스탄불,부르사,콘야등에서 볼수 있다.

콘야는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행하기 때문에  매일 행하는 부르사에 가서 보기로 계획한터라 이곳에서 굳이 보려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는  극장식 식당에서 잠시 보여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상품화된 종교의식이란 이미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수피즘이나 마블레나교와 세마의식을 생각하며  아씨시에서 태어나 평생 청빈을 강조했던 성 프란시스코와 흡사한 교리로 비교되었다.

아씨시가 성프란시스코를 기념하며 그의 이름으로 모든 기념품이 팔려가 듯 이곳은 마블레나와 세마인형등이 기념품으로 팔려간다.

콘야는 아씨시에 비해서는 훨씬 종교적인 도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차 찾아 오는 박물관 마블레나 젤라레띤 루미의 관 앞에서는 두손바닥을 올려든채 기도에 열중인 남자들과 한구석에 앉아  좌우로 몸을 흔들며입술만 움직일 뿐  혼신을 다해 기도드리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

 수많은 참배객과 관광객이 지나가도 그들과 신사이에 이어지는 대화 사이에는  아무것도  장애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젤라레띤 루미(1207-1273)

아프카니스탄에서 태어나 몽골의 침입시 피난,1228년  콘야에 정착했다. 부친은 대학자로 젤라레띤 루미는 시리아 에서 수학 후 콘야로 돌아와 아버지를 이어 철학자가 되어 깊은 사상과 철학 세계를 이루었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다>

콘야 "인제 미레나 "박물관을 방문하여 입장한 나에게 젊은 박물관 직원은 나에게 박물관 안내서를 주고 싶어 일본어판 안내서를 가져 왔다.

일본 옆의 한국인이라 일본어정도는 읽을 줄 알았나보다.

 영어판이 없냐 물으니 나중에 미안하다며 대신 가져다 준것이 콘야 시청에서 발행한 한장의 종이에 아름다운 색갈로 씌여진  일곱개의  교훈이다.

1.In generosity and helping others be  like a river(남에게 친절하고 도움 주기를 물처럼하라)

2.In compassion and grace be like Sun(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3.In concealing others' faults be like night( 남의 허물 덮는 것을 밤처럼하라)

4.In anger and fury be like dead(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하라)

5.In modesty and humility be like earth(자신을 낯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하라)

6In tolarance be like sea(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7.Either exist as you are or be as you look(있는 대로, 보고 있는 대로 행하라)-

 

  T.R Govermentship of Konya Publication of Culture and Tourism Directorate

 

주)참고:가고픈 성서의 땅-터키 (이영희 지음)/All about 터키(민병규 지음)/가이드북 Just to go

 

 

 

마블레나 박물관.원래는 수행장으로 사용하던 것을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메블레나 젤레레띤의영묘가 있다.

 터번을 올린 커다란 관들이 인상적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안내도에  1,2번 의 관이 표시되어 있다.

 1번이 제일 큰 관으로 안내인에게 물어 보았다.

혹 젤라레띤 루미의 부친것이 아닌가 해서다.

제일큰 1번이 젤라레띤 루미의 관으로 시신은 관아래 땅에 매장되어 있다 한다.

 

 

 마블레나 박물관 밖

 

 마블레나 박물관을 들어가려면 비닐 덧신을 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페트가 다망가지고 관광객들에게 맨발로 신발을 들고 다니게 할수도 없어서다.

 젤라레띤 루미의 묘가 있어 신성한 이곳에서 소리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마믈레비(수도자)들의 수행모스과 생활을 재현한 이곳에서 허락을 구하고 찍은 것이다.그

들이 쓰는 모자(터번)가 특이하다.

조선시대 외국인들이 기이하게 본것은 우리나라 양반들이 쓴 모자(갓)였다고 모두 기술하고 있다.

 

 메불레나 박물관에서 만난 콘야의 대학생 에제(Ece)와 두체(Tugce).

박물관내에는 각종 크고 작은 쿠란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자도 글씨체를 다르게 사용했듯 쿠란도 아라빅 글자체를  아름답게 형상화 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내용을 알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출구 부근 유리상자 주위를  돌며 여인들이 유리상자에 손과 얼굴을 대고  대고 있어 여인들이 기도하는 줄 알았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가서 작은 구멍사이로 냄새를 맡아보라고 영어로 말한 아가씨가 에제다.

작은 상자안에는 마호멧의 수염이 담긴 상자가 있고 작은 구멍에 코를 대보았다.

작은 구멍사이로 향내가 스며 나온다.

여인들이 얼굴을 대고 하던 것은 향내를 더 맡아보려 한것이었다.

태어나서  처름 맡아보는 향내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에제>는 이곳 출신이 아니고 이곳 대학에서 관광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이다.

Tour Guide 가 되는 것이 꿈이다.상당히 미인인 아가씨고 성격이 밝았다.

관광학과를 다녀서 그런지 영어를 잘했다.

<투제>는 경제학과 1년생.

모두가 자유로운 신 여성 복장이다.

 

 

 

 

"인제 미나레'박물관을 안내해준 대학생 알리(Ali)와 학교 친구들.

나혼자 한참 걸어 더운 날, 아이스크림집이 있어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었다.

알리가 내아이스크림까지 들고 있다.

대학생들 모두 용모가 수려하다.

그러나 콘야가 종교적인 도시답게 여학생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스카프조차.

 그렇다고 학생들 자체가 보수적은 아니다.

모두 명랑하고 쾌활한 여학생들이다.

그들에게서  21세기의 고민을 혼자 하고 있는 그런 학생을 찾기란 힘들 것같다.

 

아담한  "인제 미나레" 박물관에는셀축,오스만 시대의 대리석 부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도 날개 달린 천사가 있다.

 미나레 박물관 앞에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편지를 하고 싶은지 이멜을 부탁하던 여학생들.

빨간 옷입은 여학생 이름은 <쉬라>.

 언덕진 알라딘 공원은 콘야의 심장이고 중심이다. 

이곳 그늘 잔디밭에서 얘기하던 대학생 두커플을 만났다.

나에게 해바라기씨를 쥐어준다.

이들이 먹는 가장 싸고 흔한 군겁질은 다른 터키인들과 마찬가지로 볶은 해바라기씨다.

한국의 해바라기처럼 검고 타원형으로 된 씨가 아니고 길쭉하고 회색빛을 띄었다.

시장에서 해바라기씨를 볶는 것을 보았다.

 스텐레스로 만든 작은 네모난 통에 유리가 달려있고 푸로판개스로 열을 가해 볶는다.

온도계도 달려있다.

볶는 사람은 안을 들여다 보며 경험치로 색갈을 관찰하며 볶는다.

길거리 상인들은 봉지에 넣어 꼿아 놓고 파는데 터키의 사람들 모이는 곳 ,거리 이곳 저곳에 해바라기씨가 안보이는 곳이 없다.

잠시 대화를 하는 동안 수북히 쌓이는 해바라기씨 껍질을 보며  이 위대한 옛날 유목민의 후예들이 들쥐와도 연관도 있나  생각해보았다.

 

 알라딘 거리에서 디저트를 팔고 있는 여자들.

주부들이 행사중인 바자르다.

모두 홈메이드로   달게 생긴 쿠키,케익여러가지다.

바자에서  만트(작은 만두)를 사보았다.1.5리라(1,200원)

한입을 먹어 맛을 보았다.

요거트를 섞은 만두다.

치즈맛도 나고 고추기름도 뿌렸다..

자전거를 끌고 지나던 남루한 소년이 사진 찍는 나를 쳐다본다.

눈빛을 보니 먹고 싶은 눈치다.

먹겠냐고 자리를 비켜주었더니 새 스픈을 가지러 간사이   내 스픈으로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콘야의 상징-메블레나 댄서의 그림이 유리창에 그려져 있다.2007년이라고 서있는 것으로 보아 작년에 큰 행사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젤라레딘 루미의 탄생 800년 기념해가 작년인 셈이다.

 

 

셀라예미 자미.

 아랍계,인도계여인들의 몸치장하면 손목에 치렁치렁한 금팔찌가 떠오른다.

화려한 금팔찌와 목걸이가가 가득한 금방.

한국인과 중국인은 순금을 선호한다.

터키인들의 목걸이 팔지는 몇카라트를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시장.

잘 정비된 시장안에는 우리나라처럼 가게 아닌 길을 막고 장사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통 터키인들이 즐겨 입는 원피스겸 코트가 걸려있다.

디자인으로 보아 최신 모드.길거리에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한 디자인였다.

이 옷은 주로 날씬한 여성들을 위한 옷이다.

뚱뚱한 중년 여인들은 다른 곳을 찾아야 할것이다.

배가리고 키가 커보이는데  이옷처럼 편리한 옷이 없다.

 지나다 들려본 포목점.

터키인들이 쌓기의 달인들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포목점 주인아저씨들로 나를 들어오라고 하더니  마침 종업원을 시켜  씻어온 오이를 준다.

갈증이 나는 줄을 어떻게 알았나.

구석에 오이를 한상자 사두고 심심하면 먹나보다.

 

" 아흐멧"을 만난 것은 콘야의 메인도로 알라딘 거리를 걸어 숙소를 찾을당시  부근 길거리로  30대 중반의 남자다..

내가 찾는 숙소를 안내해주며 자기 할아버지(데데)가 운영하는 호텔이라고 큰소리을 친다.

호텔의 주인이 친절한 할아버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호텔 체크인후 샤워를 하고 마블레나 박물관 가기전 점심 요기를 하기 위해서 였다.

큰 식당 옆에 서 있던 아흐멧은 이번에는 이 식당은 사촌이 하는 것이라 허풍을 친다.

저녁에 돌아오며 만난 그는 이번에는 자기 형이 하는 카핏,킬림,골동품점이라며 형을 인사시킨다.

사실은 이것이 자기 본업이라고 했다.

 코가 아주 똑같다.

 가게에 들어가 형제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진 보다 너무 늙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주민 등록증을 보여주는데 주민증의 사진과  똑같다.

 세월이 가면서 용모가 반듯했던 청년은 살이찌고 배가 나오고 ,말하자면 많이 삭았다. 

100년 정도 된 수로놓은 옷은 사진 보다 훨씬 화려하다. 

가격은 1200불.내가 필요 없어 그렇지 가격 네고를 잘한다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닌 작품이다.

아흐멧이 말하였듯이 콘야는 카핏과 킬림이 유명한 고장이다.

그는 왜 한국인들이 카핏을 좋아 하지 않는지 이상하다며 나에게 중형카핏(Rug)) 을 보여주는데 300불이라고 한다. 200불에 살수 있다면 탐나는 물건이다.

나는 그에게 한국인이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여 카페트 자체는 좋으나 잘 조화를 이루기가 힘이든다고 설명하고 주택은 별개라고 얘기해주니 좀 이해하는 듯했다.

한번은 한국으로  대량의 킬림을 보낸적이 있는데  일본의 여자 건축설계사의 딸이 몇번 보고나서 한국으로 보내달라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가 설계한 건물-대형 펜션이나 호텔에 보낸것이 아닐까가 짐작해본다.

 

높이 걸린 벽시계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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