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로 내려가면서 청계천 폭을 좁게 설계했다.
공사장 가림막이 특이하다
좌측으로 광장 시장이 보여 이곳이 종로 5가 부근임을 알았다.
전태일 다리.
청계천 옷 공장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며 분사한 전태일(1970.11.13)
23살의 청년이었다.
인천에서 군복무 시절 뉴스를 들었다.
국가의 발전 단계에서 나타난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으려던 전태일이다.
멍 때리고 있는 청둥오리.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로 토마토 반개와 호박떡 한쪽 , 사과한 개가 전부다
작은 카메라만 없었으면 노숙자가 식사하는 줄로 여겼을까.
나이들 수록 옷을 잘입어야 한다
옛날 청계천 판자촌 사진(1961)
1961년이면 한국전쟁 발발후11년후고 종전된 지 8년째다.
정부는 나중에 무지막지하게 철거했고 철거민들을 성남 허허벌판에 내던져 놓았다.
선교 활동하던 김진홍 목사는 철거민들을 데리고 경기도 화성으로 내려가 돼지농장을 운영했다.
김 목사 님의 간증집에 자주 등장하는 판잣집 철거민들이 있다.
빨래터를 모티브로한 작품.
황학교.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궁금한 나같은 사람을 위해 설명문이 붙어 있다.
장마 시엔 승강기는 1층에 정지시키고 아래 청계천의 엘리베이터는 방수문으로 닫아 버린다고 한다
다리 위에서 본 청계천.
산책하는 분과 운동 겸 출근길로 이용하는 분들이 늘어났다.
일단 다리를 건너자 우측으로 아파트다.
청계천 삼일 고가를 지나면 우측으로 달동네를 가리기 위한 좁고 낡은 5층 아파트가 있던 곳으로 짐작된다.
다리에서 본 청계천
스타벅스다
동네 스타벅스처럼 9시에 오픈 하지않고 10시에 연다.
9시 10분전.
일단 빌딩에 들어서 오픈 중인 Mega Coffee에 들려 커피 한잔 주문.
머그잔이 없는 곳이다.
커피가 지독히 뜨겁다.
너무 뜨거운 온도에서 맛좋은 커피 맛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아침 일찍 열고 있는 카페에 감사한 것으로 충분하지.
30여분 휴식 뒤 다리도 편하고 몸도 가뿐해져 청계천을 계속 걷기로 했다
커피점에 들어올 때만 해도 몸이 무거워 청계천 길을 두 번 나누어 나중에 다시 걸으려 했다.
중간중간 비가 오면 자동으로 열린다는 수문들이 있다.
한국도자기 본사.
창업자의 경영 방식을 고수하여 은행에서 차입금 없이 순수히 자기 자금으로 건축해 상당히 오래 건축 기간이 소요되었던 건물.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존치하듯 기둥을 일부 문화유산으로 남겼다.
서촌 수성 계곡에도 공원을 조성하며 주민들이 원해서 아파트 일부분 벽을 기념으로 남겼다.
시민들이 제작한 타일.
무상이었나 유료로 했나 궁금하다
청계천 판잣집의 재현.
사진과 실제 비교하면 반듯한 유리창 하며 럭셔리한 카티지 수준이다
여전히 다리 밑은 시원한 휴식 공간이다.
왜가리도 백노도 비둘기- 모두 날 것들의 모임이다.
가마우지.
가마우지 한 마리가 고기를 잡아먹느라 정신없이 휘졌고 다녔다.
출발 준비 중인 아줌마 자전거 동호회.
남자들은 자전거 좌측에서 타는 한편 아줌마 동호회에선 우측에서 타는 것으로 배운다 들었다
아주 작은 청계천 생태 동원.
하류로 오며 넓게 조용히 펴진 청계천
외각 순환도로 밑으로 여러 가지 운동시설이 쭉 늘어서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청계천을 나와 드디어 마주친 중랑천과 동부간선 도로.
뚝섬 역 방향.
사진을 찍으며 의자에 앉아 있던 작은 할머니에게 지하철 방향을 물어본 게 이야기의 시작이다.
인간은 외롭다.
광화문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단 내 말에 먹고 사실만 한 모양이라고 함축적인 말을 했다.
매일 집에서 천천히 이곳까지 40분 걸어 온다음 이곳에 40여분 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과라 했다.
할머니는 말할 상대가 필요했는지 자기 얘기를 조용조용 늘어놓았다.
내 나이를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84세.
많이 배우신 분은 아니나 자분자분 조리 있게 얘기를 잘하셨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할머니의 얘기를 맞장구도 치며 잘 들어드리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나간 일생의 얘기는 흥미로운 주제고 소설에 가깝다고 할 만큼 흥미롭다
이불 한채 가지고 시집와 딸 셋에 아들 하나 낳고 남편은 사별.
큰 딸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는데 미국에서서 박사 된 사위와 미국 이민후 소식 없는지가 25년이라 했다.
돈문제로,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 문제로 가족 간에 의절한 얘기를 솔직히 얘기하는 할머니 눈에는 보고 싶은 딸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오랜 시간 얘기를 들어드렸나보다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는 동안 마치 오래 알아온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기분이 들까
우측 낮은 다리는" 살곶이 다리"다.
살곶이 다리
한양대 역 방향.
집에 와서 거리를 보자 오늘 총 12킬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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