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의 해외여행이 현재의 건강상태로 어려워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 방문할 List에 있던 청도 운강 고택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혼자서 서울서 내려올 때 계획은 청도고택, 창원 김종영 (조각가) 생가를 방문하고 영양군 이문열 생가인 제현이씨 집성촌을 보고
안동에 들려 옥야 식당의 "해장국'을 먹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영월 섶다리 사진을 찍고 충주 미륵사지를 방문하여 올라 오는 일정으로 지방 어느 곳에 하루 묵으면 되었었다.
그러나 은퇴한 영동 동생이 운전하며 동행해주어 계획을 수정하여 차를 두고온 영동으로 돌아가야했다.
집에서 먹으려 몇그루 심는 감나무와 달리 청도는 감의 고장답게 감나무 과수원이 이곳 저곳에 펼쳐졌다.
ㄱ마꽃 피는 봄과 가을 붉게 감들이 물들어 갈 때 얼마나 장관일까 하는 생각에 늦가을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금천면 신지리엔 운암 고택,명중고택,선암 고택,도일 고택등이몰려 옛 양반가의 부촌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운강고택과 별채인 만화정이 특별히 관심이 가는 곳이다.
소요당 박화담(1479-1560)이 무오사화에 동향 선배들이 화를 당하는 모습에 낙향하여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영조 2년(1726)박중응이 처음 서당터에 집을 짓고 순조 24년(1824) 11대손 박시묵이 중수를 했다.
동창천변에도 만화정을 새로 지었는데 운강은 박시묵의 호를 이른다.
현재 6대손 박정주의 소유로 사가인 셈이어서 도착한 시간에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꽃담 -길자와 거북등 문양,꽃들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곡간,안채,행랑채의 집들을 담넘어로 올려다보는 정도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400미터 지점 동창천변에 자리한 "만화정'으로 향했다.
루가 있으나 정자가 아니고 후학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밑으로는 동창천이 흐르고 뒤는 송림이 우거져 얼마나 멋진 장소인지 감탄이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천변에 모인 20만의 피난민을 위로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묵고 갔다는 곳
만화정 역시 문이 잠겨 있다.
밖에서 보기에도 충분하고 감사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잘 관리 했는지 달리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운강 고택/만화정
경상남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269-1
(청도군 금천면 선암리 1-474)
운강 고택
막다른 골목에 대문이 있다.맞바람(나쁜기운)이 집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걸 막기위함이다.
흙돌담은 우리 조상의 지혜였다. 부잣집아닌 서민은 울타리와 삽작문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햇다.
운남 고택 담넘어 보이는 운강 고택
만화정 앞에는 오래된 왕버들 나무가 이곳의 역사만큼 수령이 되었다.
단아한 만화장의 모습 . 루에 둘러싸인 마루에서 내를내려다 보던 옛 선비를 상상한다,
보조 기둥을 바쳣다. 사찰중엔 무리한 건축으로 보조 기둥들을 새워 대웅전을 쓰러지지않게 바치고 있는곳들이 있다.
사사인 이곳도 기둥을 보니 지붕을 유지 할만한 기둥이 아니다.
이곳 대목역시 무리수를 두었다.
왕버들 나무 .청송 주산지에 잠긴 왕버들과 같은 종류로 짐작.
동창천.
다리가 없고 보가 없던 시절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