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안텝(Gaziantep)"을 출발 하여 지중해 가까운 도시 하타이(Hatay)로 가는 길이다.
하타이는 성경에 안디옥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대의 지도상에서는 안타키아(Antakya)로 표시된다.
이번 여정에 터키 카르스와 그리스령 로도스섬을 꼭 넣어 하타이를 들린 다음 다음 목적지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난감하다.
우선 하타이에 들려< 베드로 동굴교회>를 찾아가고 하타이의 명물<큐네페>를 먹어 보는 것 두가지로 압축했다.
안텝에서 하타이로 가는 길은 산과 들이 펼쳐진다.
밭에 간간히 노랗게 물들어가는 밭작물이 무엇인지 궁금해 옆의 남자에게 물어 포도 그림을 그려주자 맞다고 한다.
키가 아주 작은 포도원이다.
그와 통성명을 했는데 그의 이름은 "압둘라디브"였다.
안디옥은 아나톨리아에 두곳으로 한곳은 '피디시아 안디옥(비시디아 안디옥 .현지명은 "얄바츠".바울의 1차 전도 여행지로 바울이 첫 설교를 했다. 행 13:14)'과 '시리아 안디옥(수리아 안디옥)' 이다.
시리아 안디옥은 처음 유대인 아닌 이방인인 헬라인에게도 복음 을 전한 곳이다.
시리아 안디옥 -하타이는 시리아 국경에 위치하며 지정학적으로 바울의출생지로 알려진' 타르소스'(성경엔 다소)에서 250키로 떨어져 있으며 버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지중해에서는 30키로 덜어져 있으며 예루살렘에서는 500키로의 거리다.
가지안텝에서는 약 3시간이 소요되며 중간에 검문이 있고 하여 약 4시간이 걸렸다
중형 버스요금 23리라.
항공편을 이용하려면 이스탄불에서 아다나(Adana)까지 국내선을 이용한후 다시 버스로 3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교통이 편한 곳이 아니다.
안타키아는 B.C 333년 이지역에 들렸던 알렉산더 대왕이 도시건설을 희망함에 따라 그의 사후 무장이었던 셀레우코스1세(B.C321-281)에 의해 세워졌다.
부왕 이름을 따 안티오크(Antioch)라고 불렀다.
셀레우코스 1세가 죽을 무렵엔 안타키아는 마케도니아에서 인도 국경에 이르는 방대한 왕국의 수도였다.
안티키아는 물이 풍부해 도시로 발전하며실크로드에 속해있어 헤레니즘 문명의 세계로 물건을 전하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전성기엔 인구 70만의 도시였으며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1세기 중반 (B.C 64) 예술의 도시 안타키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제국 시대엔 알렉산드리아가 경제중심지였던 것에 반해 안타키아는 제국 동쪽의 군사,외교그리고 경제 중심지 역할까지 담당했다.
안타키아는 638년 아랍 점령을 거쳐 비잔틴,셀추크가 통치했다.
셀추크 시대 11세기엔 십자군과의 격렬한 공방이 펼쳐진 곳이다.
비잔틴 시대 번영하던 이도시는 523년의 대지진으로 약20만명이 사망했고 페르시아군의 침략으로 도시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1,516년 오스만 제국 셀림 2세가 정복한후 1918-1939년까지 프랑스 자치령으로 있다가 터키 공화국에 편입되어 소도시(인구 16만)으로 남아있다.
안타키아는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으로 바울의 동역자 인 의사 "누가(Luke)"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고대 스미르나 Smyrna-현지명 터키'이즈미르 Izmir)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고향이기도 하다
포도나무
노랗게 물들기 사작한 포도원
내가 하루 묵은 시내 오누르 Hotel( onur hotel)
Tel: (0326) 216 22 14
Onur란 Self respect 자존,자긍심을 의미한다
터키에선 드물게 여주인이 자릴지키고 있었으며 영어를 잘하고 아주 친절하다
숙박비 아침 포함 70을 65라리(28,000원)에 해주었다.
옛날 지중해로 들어가던 아시강(옛 이름으론 오론테스강) 옆에 있다
시내버스 요금 1.5라리(700원)
호텔 여주인이 일러 준데로 한 10여분정도 가자 버스기사가 이 부근에 내려주었다.(2키로)
성 베드로 암굴 교회가 있는 곳이다.
올리브를 털기위해 나온 아주머니들
베드로 동굴 교회로 들어가려면 버스 정류장에서 약 500미터를 걸어야 한다
베드로 동굴 교회는 "살피우스"산 중턱에 위치하며 현재는 양쪽에 벽을 쌓아 교회를 보호하고 있다
입장료가 있다.
스테판 순교후 30여년간 예루 살렘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자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피난해와 베드로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예배를 드리던 동굴 교회다.
사도 베드로는 얼마동안 안타키아에 살면서안타키아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 있었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아 "다소"에 가서 만나 안디옥 으로 와서 두 사람이 1년간 가르쳤다.(행11:25-30)
동굴 교회는 밖에서 상상했던 규모보다 컸다.
교회안에는 식수 혹은 성수로 사용했을 샘이 만들어져 있고 긴급히 피난할 비밀 통로가 있다고 한다
산 뒤쪽으로 난 4키로의 비밀 통로다.
그들만의 공동체로 통하는 길이기도 했다.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크리스쳔)으로불리워지기 시작한 곳이다(행11:26)
현재 남아있는 동굴 교회의 정면은 십자군이 안타키아에 하나의 공국을 건설했을 당시(1098-1268)에 다듬어진 모습이다.
바닥의 모지이크는 4-5세기경의 비잔틴 시대의 것이다.
새로 보수한 동굴 교회 정면의 모습
터키 국경에 있는 안디옥에 가면 ‘하비브 나자르’란 산이 있습니다.
하비브 나자르는 ‘목수를 사랑하는 자의 산’이란 뜻인데,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신앙을 찾아 산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
굴을 파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곳입니다.
그 산은 전체가 절벽이며 몸을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많이 있는데, 그 구멍은 굴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굴 안에는 돌로 만든 설교단과 성도들이 세례 받을 때 쓸 수 있는
물도 흐르고 있답니다. 이 유적지는 근래에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발견됨으로 우리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발자취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들이
핍박 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중략)
다니엘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기에
사자굴에, 풀무불에 던짐을 당했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사랑했기에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어갔고,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로마에서 전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으며,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X자형의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임을 당했으며,
빌립은 소아시아 부르기아에서 기둥에 매달려 죽었으며,
바돌로메는 인도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전도하다 창에 맞아 죽었고,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목 베임을 당했으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죽었고,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 제자가 된 맛디아는
돌에 맞아 에티오피아에 죽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사랑한 사람들의 행적이요,
행보요, 발자취입니다.(중략)-가져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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