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세번째 터키여행 (조지아·이란)-2012

양교수와 3인의 도보여행자(Travelers on foot)

Jay.B.Lee 2012. 12. 31. 07:26

 

        

우연히 인포메이션센터에 들어가자 양교수가 저녁에 전화하라고 했던 도보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쉬고 있었다.

도보여행자나 배낭여행자들이 쉬어 갈수 있는 공간을 그들은 잘 활용하고 있었다.

저녁까지 기다릴 것 없이 그들을 태워 양교수님댁으로 향했다.

차에서는 세이드릭에서 나는 냄새로 가득찼다.

마치 노숙자에게서 나는 냄새로 머리가 좀 어지러웠지만 누구하나 말을 않했다.

        

텔아비(Telavi) City Information Center 직원과 양교수

 

 

인포메이션 센터의 여직원은 다른 곳과 달리 친절하고 적극적이다.

이름을 물어 어디다 적어 놓았는데 기억할 수 없다.

남편은 Telavi 경찰로 부부의 생활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인다.

조지아 경찰들은 부정을 모르는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한일중의 하나라고 한다.

 

 

 

 

떠남,그 하나로 족하다-르네 샤르(Rene  Char,프랑스 시인)

 

여행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 여김을 받을 뿐이다.-아랍속담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히 이르기 위해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다비드 드 브르통의"걷기 예찬'

 

길은,떠나기 위해서 존재하지요.길 위에서 인간은 부딪히고 ,화해하며 ,깨닫고 성장합니다.

길 위에 설 때면 저는 막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여행자처럼 아득한 위안을 느낌니다.

                                                                    이미도의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에서

 

도보로 걷는 것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혼자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형언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법정

                                                                         법정의 "홀로사는 즐거움"에서

 

걷는 다는 것은 신체적인 활동인 동시에 정신적인 활동입니다.

걸으면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홀로 걷는 여행은 잊고 지내던 자신을 만나게 하고 육체적인 제약과 환경에 묶여 안락하게 사고하던 자아를 해방시킵니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2004년 한국 방문시 기자 회견에서

 

 

왜 산에 오르는가?에대한 해답은 유명한 등산가의 말로 한마디로 정의 되어 있는 듯하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우문현답을 떠나 도보여행자에게 "왜 걷는가?"하는 질문을 천번도 넘게 받았다는< 올리비에>는 오랜 시간을 거쳐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네,나는 소녀처럼 호기심이 많습니다

.내 존재를 꽉 죄어오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토록 실망스럽고 불완전한 현실에서 벗어날 거예요.

그래 난 내 영혼을 깨우러 가야겠어요.

무덤처럼 그대로 있으면 어둠의 유혹에 이끌리고 말겁니다.날 파멸시킬."

 

 도보여행자 *김남희씨가 우리나라사람으로 세번째로 스페인 성지순례길 "산티아고 데 콤파스테라 "의 800키로를 다녀온뒤 그녀의 도보여행기가 인기를 끌었다.

유럽의 여행자에게 평범한 도보여행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새롭게 ,특별하게 받아져서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다는 그 길을 따라 야고보를 기념하기위한 교회까지 가는 길이다.

김남희씨는 혼자여행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모든 과정을 거쳐 이제것 몰랐던 자기 자신의 이면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서 얻는 희열"이라고 도보여행의 묘미를 밝혔다.

우리나라에 또 유명해진 도보여행가* 황안나(본명:황경화) 할머니가 있다.

파란만장의 삶을 살며 57세 교직을 떠나 도보 여행을 시작하며 도보 여행가로 불리워진 73세의 할머니다.

"과거 저를  인간적으로 짓밟은 사람들,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입었던 상처는 몇십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더군요.

길을 온종일 혼자 걸으며 생각을 해보니까 저도 남에게 상처를 많이 입혔더라구요.

길 위에서 용서를 빌었고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됐어요.

용서의 길이었고 치유의 길이었습니다."라고 그녀는 고백했다.

 

프랑스 여행자들은 각기 홀로 여행자다.

여행자들이 그렇듯 만나서 의기가 투합되면 어느 목적지까지 함께한 다음 헤어지게 된다.

양교수의 친구로 "아제르바이젠" 사람이 있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조지안 아제르바이젠인으로 영어를 잘하는 친구인데 어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전날 자기집에 흥미로운 프랑스 도보여행자가 왔다하여 가서 만나고 양교수께서 나도 온다하고 하여 모두 오늘 집으로 초청한 것이다.

프로랑은 30대 초반남자로 여행을 시작한지 막 6개월이 되었다 한다.

자르지 않은 긴 수염을 한 그는  키가 작고 온화하게  생겼다.

 프랑스에서  컴퓨터 관계회사에서 일하다  Work out 을 당한후 일년 계획으로 여행중이며 북유럽을 거쳐 봄에 프랑스로 돌아 간다고 한다.

여자인 카트리나는 지금 일년째 여행중으로 10년 계획으로 시베리아를 거쳐 알라스카로 ,그곳에서 남하하여 남미 부라질 끝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키가 크고 오랜 여행으로 바싹마른 세드릭은 레게 머리를 하곤 긴 여행으로 땀에 찌든 노숙자 냄새가 많이 난다.

 옆에 있기가 조금 뭐할 정도다.

도보 여행을 해도 자주 빨아입고 목욕하고 관리하면 자기 자신도 기분이 좋으련만.

그는 말이 없어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단지여행자라는 것 뿐

셋이서 만나  지금은 일정을 함께한다는 그들에겐 도보 여행자의 원칙이 있다.

 

첫째,반드시 목적지까지 걷고 온길을 되돌아 온다던지 하는 경우만 차를  탈 수도 있다

 둘째,하루 경비로 <2유로 >이상을 지출하지 않는다.

 

2유로라면 3천원정도의 돈이다.

그들에겐 여행이란 무엇이며 도보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각자의 상처가 있고 자기들의 고민과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여행이 스스로 택한  수도자처럼 고행의 길이다.

여행 중간 중간 식사도 대접받고 잠자리를 제공 받는다해도 육체적으로도 참 힘든 여행길임에 틀림없다.

카트리나의 경우 앞으로 걸어야 할 9년의 기간을  감안하면 약 7,000유로(천만원: 2유로 X365일X9년)의 비용이 든다.

천만원으로 9년을 살아간다는 얘기다.

독서를 좋아 하는 양교수님은 서울서부터 책까지 가져 오셨는데 파울로 고엘뇨의 열열한 독자다.

 이곳까지 그의 책들과  *'순례자"(영문판,프랑스어판)를 가져다 읽고 있었다.

양교수님은  진정한 여행자로 부터  진지한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주로 대화가 프랑스어로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같은 자유 여행자는 진정한 여행자의 범주에서 그들과 비교하면 한참 먼사람이다.

 

<비고>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프랑스인으로 예순 두살이 되던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12,000키로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홀로 걸어 여행했다.도보 여행후 "나는 걷는다"를 출판하였고 다시 프랑수아 데모르와(화가) 와 동행 다시 실크로드를 걸었다

멋진 수채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책"여행"을 발간했다.

 

*김남희 :1970년생 경남상주 출생으로 삼척에서 성장했다.

8년간의 연애끝에 결혼하고 2000년 1년 8개월 만에 이혼하고 전세돈,적금으로 3,000만원을 마련 도보여행에 나섰다.

 그녀가 여행한 기간은 총6년이다.

그녀의 여행기는 한겨레신문과 2003년 1년간 월간 중앙에 연재되었었고 오마이뉴스에 몽골여행기가 연재 되었다.

 그녀가 여행자로서 수 없이 받은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지금 여행하고 있는 나라"라 대답한 것은 아주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The  country you are traveling "  이라고 대답해 주었으니까.

 앞으로 네가 갈 나라도 포함하여.

 

*황안나(본명 :황경화)

1940년생.

사범학교(옛날엔 고교과정인 사범 학교를 나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1963년경 폐지하고 2년제 교육대학으로 승격)를 나와 23세에 결혼. 남편의 연이은  각종사업 실패로 파란만장의 삶을 살았다.

이혼 아닌 이혼을 하고 나중 남편이 욕실 제품 수출로 재기하자 정년을 7년 앞두고 57세에 39년 6개월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접었다.

65세에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해 "네나이가 어때서?" "안나의 즐겁게 사는 비법"등 책을 내었고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순례자"

파울로 고엘뇨가 1986년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지 도보로 700여키로를 걸어 여행후 그 감동과 느낌을 책으로 출판했다.

    

          

좌로부터 프로랑,카트리느,세드릭,양교수-

 

  양교수님 사무용 테이블도 이런때는 다용도로 훌륭한 식탁이 되었다

양교수님은 여행자들에게 장봐 온 것으로 저녁은 도보 여행자들이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재료는 닭을 포함하여 충분했으니까 프로랑은 닭 바베큐 를 만들기로 했다.

 카트리느는 감자를 잘게 정사각형으로 썰어 튀김감자처럼 만들었다.

나도 그들을 도와 양상추에 붉은 무,토마토등을 넣고  올리브유와 식초를 드레싱으로 넣어 셀러드를 만들었다.

 한국식으로 오이에 식초를 넣고 여행길에 챙긴 작은 고추장으로 맵지 않게 버무려 한국식 오이무침을 하나 더 선보였다.

청청원 고추장,식초,설탕을 넣었는데 우리나라 오이였다면 더욱 빛이 날일이다.

후식으로 내가 사온 조지아 단감과  양교수님 호두나무에서 수확한 호두와 내가 터키 에서 가져온  페파민트차를  대접했다.

시장에서 사온 빵과 양교수님이 직접 담구신 포도주-외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이 있어 더 풍성한 식탁이 되었다.

조지아의 전통식으로 담근 와이트 와인은 껍질과 포도,줄기까지 함께 넣어 숙성시켜 빛갈은 옅은 다갈색을 띈다.

잘익은 농주처럼 발효냄내가 식욕을 돋운다.

한국식 전통약주에 익숙한 분이라면 어디서 많이 맡던 냄새라는 걸 금방 알아챈다.

약 ,5,000여종의 포도중 500여종을 재배한다는 조지아에서 제일 유명한 와인은" 레드  사페라비(Saperavi)"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치난달리(Tsnandali)"가 유명하다.

이곳에서도 이젠  "피노 누아르(Pino Noir)'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교수님이 담그신 레드 와인은 양교수님이 발품을 팔아 좋은 포도밭을 다니며 포도를 선정하여 구매하였다고 한다.

 처음 담근  피노 누아르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어 흐뭇해했다.

붉은 색보다 짙은 코발트색이 섞여 부드러운 벨벳을 보는 기분이다. 

바디감도 좋고   과일향이 그만이다.

단지 약간 숙성이 더 되었으면 깊은 맛에  필터링이 되었더라면 최상일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고급 와인을 먹으려면 큰 출혈을 해야한다. 

나는  이 가련한 도보여행자들이 충분히 쉬도록  아침 준비는 내가 하겠다고 자청해서 나섰다.

내일 떠나는 그들을 위해 조금 편한 여행을 하는 내가 편의를 제공하고 싶었다.

 

        

여행자가 포도주까지 곁들인 저녁을 하고 따듯한 잠을 자는 것처럼 행복할까.

아침 난로를 핀 따듯한 거실마루바닥에서   각자 슬리핑 백속에 들어가  잠을 잔뒤 아침 더운 물로 샤워하고 때빼고 광낸후라 그들은 기력을 찾은 것 같았다.

더우기 내가 차려준 아침상까지 물리고 난뒤다.

나는 어제 시장 본 것과 양교수님의 냉장고를 우리집 냉장고처럼 뒤져 아침준비를 했다.

차리고 보니 아침 식탁이  "터키식 아침 정찬 "처럼 되어버렸다.

삶은 계란만 준비했더라면 터키식으로 완벽하다.

양교수님이 고기와 뼈로 고아놓은  국에 내가 가져온 한국야채죽 2인분을 넣고 끓여 스프를 만들었다.

진한 고기국에 쌀이 섞여 내가 생각해도 그럴사한 스프가 되어 충분한 양이 되었다.

고기는 따로 떼어 잘게 찢어 작은 접시에 담았다.

각접시에다가 큰 사각 쟁반에는 토마토,오이,치즈를 썰어 가득하게내었다.

그리고 양교수가 손으로 북북 찢어놓은담백한  빵에 어제 내가 사온 요거트를 한잔식 곁들였다.

먼길 떠나는 손님들이다.

나도 손님이지만 손님이 손님을 대접하는 기쁨은 더욱 크다.

 후식으로 커피와 사과를 내었다.

그네들이 충분히 쉬며 천천히 짐을 쌀 수 있도록 내가 설거지까지 도맡았다.

설거지는 집에서나 교회에서 수년간에 걸쳐  해온터라 이젠 이골이 났다.

      

도보여행자들과 내빨래가 늦가을 더운 햇볕에 바싹 말랐다.

두개의 스커프중 푸른 색은 내것이고 검정색은 프로랑 것이다.

색상만 다를 뿐 미국의 동일 회사 제품이어서 둘이서 우연히 똑같은 스커프를 가진것을 신기해했다.

 

       

아침 식사후 출발전 담소.

세드릭은 레게 머리를 풀고 꽁지머리로 전환했다.

 

 

양교수집에서 출발전 기념사진을 찍었다.카트리느 카메라로 내카메라로 ,양교수님 카메라로 각각 찍다.

양교수님이 조금 더 태워다 주겠다고 권유해도 이 지점부터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순례자라면 무엇보다 발로 걷는 사람,나그네를 뜻한다.순례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털어낸다-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두 남성 도보여행자들은 행장이 가볍다.대나무 스틱이 제일 유용하다.

카트리느가  문제다. 몸은 다부지나 키는 제일작으면서 배낭은  제일 무겁다.

가슴에 맨 보조가방의 렙탑과 카메라가 큰 부담이다.

 저 무거운 짐을 다 메고 앞으로 9년을 더 걷는다면 무릅이 완전히  나갈 수 있다.

눈 질끈 감고 짐을 더 줄여야한다.

 이제 채비를 한 그네들은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다.

그들의 여행길에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했다.

 

 

여행에 대해 여러사람들, 선현들의 의견을 들어봅니다.
"나는 편안히 새 삶에 안주 할수 있었다.그러나 나는 나이드는 법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삶으로 부터 떨어져 내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여행을 했다고 해서 내가 더 노련해지거나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오래 돌아 다녔기 때문에 더 늙고 몸만 뻣뻣해졌을 뿐이다.
-라인홀트 메스더(산악인,8천 미터이상 14좌 등정)

 
산속을 걸을 때면 내가 세상에서 떨어져 혼자라는 느낌 못지않게 지구와 내가 단단하게 묶여져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걸을 때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진다.
걷는 동안 나는 세계의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된다.
-김남희 "유럽의 걷고 싶은 길"에서

 
여행가의 행복은 굳이 동행을 필요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나혼자 버려진 것 같은 일종의 공포감을 나누려는 습관적 의존심을 떨쳐 버린다면 ,우리는 혼자서 떠나는 여행만이 진정한 여행임을 알게 될지 모른다.-황주리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서나 널려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연결된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일의 역동성을 그열의로부터 열심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알지 못하는 곳을 구경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미상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앞으로 내가 몇번이나 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볼수 있을까.
한가지 확실한 건 "사랑없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헤매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故 장영희(영문학자)

 

내가 세상과 뒤섞이면서도 내가 가진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하며 하찮은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멀리하여 살아왔다면 그 것은 그대 덕분이다.....
그대 바람과 요란한 폭포...그대 덕이다.
그대 산이여 ,그대 덕이다.
오,자연이여!-윌리암 워드워즈
 
우리는 때론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소유물,모든 관계를 떠나 어떤 고요한 장소에 머물거나 방랑할 필요가 있다-유시화

낯선 고장을 해메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같은 것이 지나간다.
나그네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는지 내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는 없다.
자기 정진의 엄숙한 도전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될것 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法頂 "영혼의 모음"에서

 

일본 선승 '순류 스즈키'의 말로 마무리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뒤에 남지 않도록 ,뜨거운 불처럼 우리의 삶을 살아야한다.
모든 것이 하얀 재로 타버리도록!"

생각하면 모두가 여행자들인 우리들의 삶이 모두 그렇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긴 여행이니까요
"내일과 다음 생애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 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티벳 속담이 맞는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인사동 경인 미술관 찻집.

해후- 조지아에서 뵈었던 양교수님이 12월 귀국하여 조지아 사랑 카페 회원님 한분과 함께  인사동에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