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손자에게 콱 찍힌 할아버지-손자의 언어 관찰기

Jay.B.Lee 2011. 9. 2. 18:02

 

아들이 일주일에 한번 집에 손자를 데리고 온다.

보통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이다.

일주일에 한번 손자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걸로 효도 한다고 볼 수도 있고 손자 상봉을 기회로  집에 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갈 수 있는 기회다.

며느리가 아들을 위해 건강식을 늘 준비하며 애를 많이 쓰고 있는 걸 알지만 아들은  결혼한지 7년이 지났으면서도  아직 "엄마의 손맛"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독립을 하려면 며느리의 음식 솜씨가 시어머니의 솜씨를 뛰어 넘어야 하는 하는 법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손자를 앞세우고 아들 내외가 왔다(아들 내외와 우린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닌다)

 안사람이 손자에게 물었다. 

"원우야,오늘 교회가서 무얼 했어요?  "

"전도사님 말씀을 들었어요"

며느리가 전도사님 말씀 잘들으라고 당부했는지 아동부 전도사가 전도사님 말씀 잘들어야한다고 했는지

여하튼 대답이 31개월된 아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집에 사다놓은 장난감-풍선,포크레인,크레인 ,지게차도 이제 시큰둥이다.

오로지 지치지 않는 관심은 "분수"고 손자에겐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대상이다.

서울 숲 ,반포대교,집앞 공내과 앞, 올림픽 아파트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 분수등 높고 낮은 분수를 섭렵한 터라 집에만 오면 분수를  그린다.

스케치 북 한권이 금방 동이난다.

다음엔 할머니를 불러다가 분수를 그려야 하는데  분수가 나오는 구멍을 '노즐'이라고 알려주며 그려야 한다.

안사람이 높고 낮은 분수에  손자의 주문대로 조명까지 붉은 색 노란색으로 멋있게 색칠을 해간다.

왜 손자를  데리고 나가 밤에 분수 구경을 시켜주었는지 조명까지 나중에 넣어야 한다

분수 사이에 서있는 손자도 그려준다..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손자가

"할아버지,분수 그려줘요"

내가  힘들게 그려주는 분수가 영 맘에 들지 않는지 크레파스 색갈까지 지정해 주던  손자가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못해요."

허억 ! 완전 충격이었다.

언제 이녀석이 비교할 줄 아는 능력이 생겼나.

아마 다시는 손자에게  분수 그림 부탁 받을 일이 없겠다.

여러가지 할 줄 아는 할아버지도 손자에게서는 분수 그림 하나로 콱 찍히고 말았다.

졸열하긴 하나 이런 기회를 만회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원우야 ,할아버지가 맛있는 것 줄까?"

냉장고 앞에 따라온 손자는 먹기도 전에 입에 흐뭇한 웃음이 가득하다.

'짜요짜요' 요거트를 꺼내는 나에게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포도 맛이야?"

손자가  딸기보다 포도맛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주말이면 미리 준비해 놓은  포도맛 "짜요짜요 요거트"로 만회해 보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비참하다.

손자는 요거트를 든채 신이 나서 까치발을 하고서 뛰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