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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맛있는 나의 단골집

Jay.B.Lee 2024. 8. 30. 12:00

오늘은 안사람이 입맛이 없는지 밥상 차리기가 귀찮아졌는지 추어탕을 먹자고 했다. 

안사람이 좋아하는 덕수궁 옆 남도추탕을 얼른 떠올렸다.

오금동에 가자는 말에 깜박 잊고 있던 "춘향골 남원추어탕"집이었다.

둔촌동에서 이사 오기 전까지 자주 가던 곳을 잊고 있다니.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듯 그렇다.

가슴 아프던 첫사랑의 이별, 해외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지인, 십 수 년년씩 같은 부서에서 함께 고락을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

늦은 점심시간에 찾아간 오금동.

주차장은  자리가 차고 식당 안의 반은 노인네들이나 그들을 모시곤 온 가족들로 

꽉 차있었다.

아직 둘이서  다닐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가.

추어탕 가격이 7천 원에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이래 지금은 14,000원이 되었다.

양배추 샐러드가 좋고 리필가능한 계란찜이 좋다 

특히 배추 겉절이나 깍두기가 달지 않아 얼마나 좋은지.

추어탕 안에는 무 시래기가 들어 있다.

남도추탕처럼 배추 시래기가 아니어서 조금 억센 맛이 있다.

연말 둔촌동으로 다시 이사 오면 자주 올 것 같은 추어탕집이다.

 

주소:송파구 오금동 10-3

 

사진: 최미자 소머리 국밥(14,000원)

 

음식 중에 가성비가 좋고 가격에 충실한 음식을 꼽으라면 곤지암 "최미자 소머리 국밥"을 빼어 놓을 수 없다.

한번 실수로 휴무일 월요일 방문, 부근 다른 곳을 찾아간 후 다시는 휴무일을 잊지 않는다.

대기 순번 나무 주걱을 나눠주며 수거할 땐 알코올로 하나하나 소독하는 집이다.

집에 포장해간다고 1인분을 요청하자 2인분 밖에 안된다며 생각하시고 다시 말씀해 주세요 하고 가는 종업원들은 잘 훈련되어 있다.

그냥 2인분 밖에 안된다면 얼마나 퉁명스럽게 들릴 것인가.

최미자 소머리 국밥집에 "특"이 없다.

"특"이 붙은 설렁탕집등은 대개가 고기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영등포 당산역부근 소머리 국밥집은 고기량이 엄청 많았는데 가격이 최미자 국밥집과 같아 조금 괘씸하긴 했다.

소머리 특유 냄새가 없고 고기량은 충분히 많다.

초고추장과 반찬으로 나온  양파가 단단하고 달며  냄새가 적어 안사람이 무척 만족해했다.

간단한 부자재에 최고를 내어 놓는다는 건 주인의 양심이고 정직함이다.

북창동  백암 농민 순대집 고추도 그렇다.

 고추가 매옴하며 단맛이 나 얼마나 맛있었는지.

계산을 해주는 여주인은 영수증엔 가격이 구분되어 있고 국 2인분 , 고기 2인분, 반찬 2인분 따로따로 넣었다고 

확실하게 말해준다.

 전에는 이웃 동네 같던 곤지암 다녀오는 길이 지금은 좀 더 멀게 느껴진다.

 

주소: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도척로 58

사진: 용금옥의 서울식 추탕 (15,000원)

 

원래는 점심으로 서촌  메밀집 "잘빠진 메밀"집을 가려했다.

음식 소개서 "한 끼 식사의 행복"이란 책에서도 소개한 집이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찾아갔을 때 전에 친구들과 다녀간 집임을 알았다.

상호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거다 

골목길을 나오자 눈에 보이는 "용금옥"

운치가 넘치는 골목길 안에 있다

무교동 에 있던 용금옥이다 

현재 무교동에 있는 용금옥에 들렸을 때 옛맛이 아니어서 실망했었다.(3대인 손자가 운영한다고 나중에 알았다)

현재는 나이 든 며느리가 가업을 잇고 있다.

서울식 추탕을 주문했다. 

무교동의 추억을 일으키는 맛 그대로다.

단지 깍두기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이다.

무교동의 깍두기는 설렁탕집과 다르게 작게 나왔다.

서울식 추탕은 부드럽고 마치 부드러운 육개장 같으면서 추어탕의 본연의 맛을 잊지 않았다.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은 여전히 기품이 있다.

서울의 옛 3대 추어탕 집이라 할만했던 용두동의 "곰보추탕" , 평창동의 "형제추어탕"들은 사라지고 용금옥만 남았다.

사람들이 육식을 좋아하고 시대를 따라 젊은이들의 입맛이 변화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음식-서울 추탕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주소:서울 자하문로 41-2  한옥

 

용금옥 입구. 20147년 빕구르망 블루 리본을 받았다.

2024 미쉘린 가이드에 선정.

 

옛날의 신문 기사들. 영광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