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에게 체험 학습차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위해 전쟁 박믈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타는 법도 완전히 배우게 하면 좋으련만 더운 날임을 감안 하여 차로 갔다.
4학년 외손자.방학 때도 학교 수업 없이도 바쁘다.
일주일 두번 영어 수업,일주일 두번 수학, 주5일 피아노,월요일 저녁 수영,토요일 오후 농구 .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지않으려면 배워야지.
후일 이 자유 대한 민국 사회에 기여하는데 역할을 한다면 배워야 한다.
손자는 시간이 많지않아 시간이 나면 노는 데 열심이다.
어린 손자가 먼 옛날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판단 할지 손자의 몫이다.
그러나 진실을 기억하고 북한의 "남침 "아닌 남한의 '북침"이었다라는 헛소리를 배워서는 않된다
직인없는 대한 민국 건국의 아버지 - 이승만 친필 임명서.
손자에게 기억하지 못할 것을 많이 가르칠 것도 없었다.
70년전 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중국과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이 남침을 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
이런 전쟁의 참상 사진에 많은 해외 외국인들이 가슴 아파 했을 것이다.
살아 있으면 나와 비슷한 연령이다.
바퀴달린 운송수단이 귀한 시절 , 지게는 유용한 운반 기구였다.
한강 철교 같이 보이는 다리 아래 보트로 연결한 부교위로 사람들이 건너고 있다.
피난 보따리.
무엇이 들었을 까?
몇되의 쌀과 보리.소금
이먀말로 고난의 행군 이다. 전재산인 소를 몰고 가는 사람 도 있다.
3백만의 희생아래 살아남았고 그리고 대한 민국은 번영했다.
흥남항구 철수시 사진 같다.
판자집. 소녀들의 눈망울이 살아있다.
생존했으면 78세,79세쯤 된 나이다.
청계천 판잣집?
1953년 7월 휴전이 되고 1954년 학교에 입학한 나.
저 칠판의 6분의 1만한크기의 칠판으로 1학년 공부를 했다.
학교가 전쟁에 불타 흙벽돌 교사에 창호지로 창문을 발랐다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책상 ,걸상도 없는 학교였다.
교실이 모자라 그나마 1학년인 우리에게 교실이 배정되지 못하고 나무 그늘 ,운동장에서 배웠고 비가오면 흙벽돌 교사 출입구에 옹기 종기 쪼그려 앉아 배웠다.
1학년 우리에게 한글과 가감산을 가르치신 담임 선생님-충북 영동 이수초등학교 <김건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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