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발칸반도 부부 자유여행(2011

Mostar 주변 돌아보기--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Jay.B.Lee 2011. 12. 27. 04:39

 


   

 

사진:Blagaj Buna 강 계곡에 있는 Tekija(Dervish 수도원)

      이스람 교파의 하나라는데 설명을 듣다보니 터키 콘야(Konya:성경엔 "이고니온-양의 가슴의 의미"로 기록되어 있다)의 메블레나 교파의 하나다.

5월에 한번 빙글빙글 춤을 추는 (세마Dance )종교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아마 종교의 창시자 젤라루띤 루미의 탄신을 맞아 행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터키의 문화가 얼마나 깊히 헤르체고비나에 뿌리 박혔나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아침 9시에 가이드인 니나의 남편 (확실치 않아도 이름이 "지카 "같다)을 따라 ㅡMostar 초입에 위치한 전통 레스토랑에 갔다.

지카는 소구룹 투어 가이드 자격 을 가지고 있다.일행은  크리스티나 부부,우리부부 넷이다.

아침 식사를 이곳에서 하며 지카는 오늘의 일정을 설명한다.

네곳-Blagaj수도원,Medugorje성모 출현지,Kravice Waterfall,Pociteij old town 네곳을 보면  대충 네시정도 돌아온다고 했다.

아침으로 그네들의 전통빵 한조각과 요구르트가  식사의 전부다.

빵은 밀가루 반죽을 긴 밧줄처럼 만들어 뱀이 도아리 틀듯 돌려가며 붙여 숯불에 구운 빵이다.

시금치,치즈,고기(소고기)를 넣은 세가지가 있다.

나는 치즈 넣은 것을 택했다.

작년 그리스에서만드는 방식은 틀리지만 비슷한 빵을 먹은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요구르트는 터키의 "아이란(소금을 넣어 짭조름하게 만든 마시는 묽은 요구르트)"과 똑같은 요구르트다.

나는 체면 불구하고 커피를 한잔 마실수 있냐고 부탁해 나와 크릿그티나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실수 있었다.

오늘 tour 요금 25유로에포함되어 조금 미안하긴했으나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수가 있나.

아침을 하며 서로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하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고 나와 크리스티나 남편이 칭찬을 했다.

나는 짖궂게 이 아이디어가 자키 당신이 생각해낸  것이냐 니나가 생각한 것이냐고 묻자 자키는 무안한듯 얼굴을 붉힌다.

아차, 그가 너무 영어가 유창해 무슬림이란 것을 잊었다.

크리스티나 부부와는  어제 저녁 얼굴을 보았지만 정식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은퇴하여 현재 파리에 살고 있으며 6개월은 파리에, 6개월은 간헐적으로 이곳 저곳을 여행한다고 한다.

한국에도 가본 적이 있으며  여수 주위를 돌아 보았고 한국 친구가 사준 산낙지를 얘기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살아있는 낙지의 빨판이 입천장에 늘어 붙던 경험은 두고 두고 얘기거리가 된다.

최근 코리아 헤럴드 근무 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뽑은 한국의 혐오음식  일곱개에 포함된 산낙지다.

일곱개란 번데기,순대,곱창전골,닭발,산낙지,삼합,보신탕이다.

번데기 보신탕만없어져도 큰 흉은 아닌데. 

그들은 큰도시보다 작은 도시 여행하기를 즐겨하며 여수 근처 모텔에 묵었는데 30유로(45,000원)에 좋은 시설을 갖춘 방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을 놀라워 했다.

한국 모텔이야 여행자를 위한 시설보다 러브호텔의 의미가 크지만  깨끗한 침대에 TV,냉장고,치솔,치약,스킨 로션,빗,서비스 생수병,헤어 드라이어,욕조까지 유럽에선 기대 할수 없는 시설이다.

크리스티나는 갑자기 가방에서 큰 여자 프라스틱 빗을 꺼내더니 한국 모텔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너무 좋다는 것이다.

빵이 아침 식사로 너무 커서 우리와 크리스티나 부부는 비닐 봉지에 잽싸게 싸서 가방에 넣었다.

모두 여행의 도사들인 셈이다.

 

커다란 주방안에 있는 숯불.

 보스니아에서 주택이나 아파트 주변에 많은 통나무 장작이 쌓여 있던 것을 볼수 있었는데 순수 난방용외에 숯불구이용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Tekja 수도원 근처의 안내표지판.

지카가 현재 복원중인 건물의 사진을 보면서 설명했다.

발코니가 오스만 터키식이고 건물의 반은 목재로 지은 것이다.

몇년전 프랑스 다이버가 혼자 산소통을 메고 탐사하러 들어간후 며칠후 시체로 떠올랐는데 산소통은 없어지고 몸은 갈기 갈기 찢어진채 발견 되었다고 한다.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동굴로 들어가면 수심 30미터 아래로 들어가 400미터 길이의 긴 수로가 연결되고 다시 위로 올라간다한다. 

그래서 동굴에서 나오는 물이 흐르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밑에서 솟아 나오는 물인 셈이다.

크리스티나와아내. 크리스티나는 아들 ,딸 다 결혼했고 딸은 스페인 사위를 따라 현재 스페인에 살고 있다면서 다음엔 스페인 가서 살거라고 한다.

아마 싼 방을 얻어 살 타입들이다. 

그들과 잠시 지내면서도 미국인들의 실용성과 다양한 인종과 부딪치며 살아온 미구인의 관용성을 보았다.

미국인들은 참 편한 사람들이다.

 

여름엔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한다. 강아래엔 송어 양식장이 크게 있다.

 

지금은 강아래 시커먼 이끼가  자라고 있다.

전신주에 붙은 이상한 광고.

내가 뭐냐고 묻자 크리스티나 남편도 이게 뭔지 궁금했다고 한다.

지카는 부고장으로 초록색은 무슬림을 뜻한다고 한다.(별과 달이 있어 알겠다)

검은색은 정교회혹은 캐도릭 신자이고 크리스찬은 검은색이나 파란색으로 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빨간색으로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부분은 농담으로 들어야 할 부분이다.

내용에는 망자의 간단한 약력을 적는다고  한다.

처음에 무슨 후보자 명단인줄 알았다.

다음으로 간곳이 메쥬고리(Medugorje)-성모 발현지다 .

Medugorje란 Between the hills란 의미란 지명으로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사진의 쌍둥이 탑 교회는 St James' 교회.

1981년 6월 24일 6명의 아이들이 성모출현을 목격한 뒤 유명해진 곳으로 폴투갈의 파티마( Fatima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처럼 성모 출현 장소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아직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한 곳은 아니다.

입장료는 없다.

처음  50여채의 집들이 있던 사람들이 불러나 이곳은 현재 4,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변했다고 한다.

뭐든 Holli(Holy)란 이름아래 묵주고 지팡이고 성물이 되어 팔려 나간다.

 

바티카 교황이 들려 가신 곳임을 알수 있다.

 

십자가없는  5미터 크기의 현대적 예수님 조각상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단체로 와서 순서를 기다린다.

1998년 세워진 예수님 조각상의 오른쪽 무릎에서 기적같이  무색의 물이 흐른다고 줄을 서서 준비해온 헝겁수건에 성스러운 액체를 담아가겠다고 두드리는 사람들

조각상앞에서 무릅꿇고 기도하며 어루만지는 신자들.

말씀 중심인  개신교 신자인 나로서는 예수님의 조각상을 우상화 하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앙심이 없다고 하진 않겠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기를 !

 

세례 요한이 예수께 물로 세례를 주는 성화앞에 두여인이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오는 이곳에 한국어 안내문도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도 많이 온다는 얘기다.

성당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여인.

우리는 죄인이오며 회개하오니 우리의 간절한기도를 들어 주소서.

교회 안에서는 집례중으로  사진 촬영 금지다.

다음으로 간곳이 Kravice 폭포다.

여러갈래의 폭포가 내려오고 있었는 데 한낮의 햇볕이 물위로 반사되어 선명한 사진 얻기가 힘든 시간이다.

 

 

 

여름이면 한 2,000여명의 캠핑족몰려와 수영을 하며 즐긴다는 곳.수심은 깊지 않다.

한 20여명의여자 관광객들이 내렸는데 그중의 한분이 우리 부부를 발견하곤 둘이 여행한다고 하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여러가지 질문을 한다.

L.A에서 오신분들로 여자 형제들이 연로하신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함께 왔다.효녀들이다

미국도 딸들이 있어야 대접받는 사회인듯.

유쾌하고 따듯한 아주머니다.

 

 

 

자동차를 타고 한참 달려 마지막으로  간곳이 Pociteij Old Town이다.

2시 45분에 밑에서 자키를 만나기로 하고 두 부부 일행은 각자 좋아한 코스를 택했다.

점심 식사를  할곳도 없고 할 수도 없어 잠시 꽃밭이 있는 곳에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에 먹다만 빵,간식으로 가져온 사과,바나나,요구르트,초코렛 캔디로 허기를 면했다.

손에 잡히는 작은 야생 석류를 깨자 먹을만은 한데  알이 너무 작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는지 여기 저기 석류 껍질이 흩어져 있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시절의 성채로 이곳 역시 90년대의 내전시 파괴되었다가 거의 복구되었다.

옛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시 그들의 건물을 종교적 이유로 파괴 하지 않은 것에 비해 ( 교회 건물을  모스크로 바꿔 사용하긴 했어도)

현대의 전쟁에서 더 야만적 행위가 행해졌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3시간이 주어졌다면 저쪽 성채가지 걸어 보련만 한쪽만 택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새로 복구된 마을엔 사람들이 산다.

 

성채에서 내려다 본 그림같이 강과 산으로 둘러 싸인 마을.오른편으로 가면 Mostar로 가는 길이고 왼편으로는 크로아티아의 Split으로 향하는 도로다.

 

 

옛 하맘(목욕탕)

가는 곳마다 여인네들이 팔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0.5리타에 5유로(8,000원)하는 석류 쥬스다.

물을 타서 희석해 먹어야 하는데 너무 양이 많아 짐이 된다.차라리 관광객을 상대로 한잔씩 음료로 팔았으면 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TV에 비친  석류 쥬스 만드는 노고를 생각해보면 너무 비싸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잘못임을 알았다.

사서 마실걸 후회막급이다.

 

 

나무위에 포도처럼 주렁주렁 달린 키위, 처음 본 키위나무다.

포도원이 길게 펼쳐진 Mostar 교외 .멀리 보이는 Mosta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