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사람은 밥힘으로 산다

Jay.B.Lee 2009. 11. 5. 05:48

밥은 온기다

쌀독에서 쌀을 꺼내 담는다. 쌀 항아리를 성주단지라 하여 대청 한구석에 고이 모셔놓던 옛 사람들을 생각한다. 쌀을 씻는다. 첫물은 빨리 비우고 소륵소륵 가볍게 씻는다. 쌀을 흘리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금기가 아니더라도, 쌀 한 톨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물을 버린다. 쌀이 불기를 기다리며 멀리 떠날 이를 생각한다. 두둑한 노잣돈 질러주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지만, 따뜻한 밥 한술 먹여 보내야 맘이 놓일 터

밥을 안친다. 밥을 안친 후에도 아쉬움은 여전하여 괜히 솥뚜껑에 행주질 한번 해본다. 아쉬움을 달래는 곳, 설움을 삭이는 곳, 밥 끓는 냄새 가득한 부엌은 그렇게 삶을 위안한다. 한소끔 끓고 난 후 불을 잦히고 뜸이 들기를 기다린다. 솥 안에서는 쌀과 물과 불이 어우러져 끓고 잦고 찌고 뜸이 든다. 행여 밥 한술 뜨지 않고 말없이 떠나버릴까 마음이 급해도, 성급하게 열지 않는다. 쌀을 씻는 그 순간부터 뜸이 들 때까지 밥은 은근한 기다림을 요구한다. 밥뚜껑을 연다. 향긋한 냄새. 구수하면서도 달큰한 밥 냄새가 오히려 아릿하다. 밥뚜껑을 열면 곧바로 주걱으로 밥알을 고루 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솥 안의 밥과 바깥 공기가 만나 밥알이 굳지 않고 고슬고슬하게 유지되는 법. 오래전 어머니는 솥에서 밥을 풀 때 주걱의 끝이 집 안쪽으로 향하도록 들이 퍼야 복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밥그릇 가장자리에 밥알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밥을 담고 나서야 한 그릇의 밥이 완성된다. 

밥을 비우는 동안 솥에 눌은 누룽지를 끓여 슬그머니 상에 올린다. 저 누룽지마저 마시고 나면 이내 떠나고 말 텐데, 밥 뜸 기다리듯 천천히 비우면 좋으련만, 떠남을 계획한 이는 무색하게도 훌렁 입가심하고 일어난다. 근기 있는 반찬 하나 장만하지 못했어도, 소복이 담긴 따뜻한 쌀밥 한그릇 먹이고 싶은 마음, 멀리 떠나 있어도 그 기다림과 온기가 내내 함께 있길 기원하는 마음, 그것이 밥 짓는 이의 마음일진데, 그저 누군가를 위해 밥냄새 피울 수만 있어도 좋을 일이다. 

 

밥은 어우러짐이다

밥은 주인이다. 산해진미가 차려진다 해도 그것은 밥상이다. 밥이 주인이라면 찬은 손님이다. 하지만 주인은 곧 손님이 되고 손님은 주인이 된다. 밥은 주인이되 무이며 텅 빈 공간의 주인이다. 무이며 공이기에 어떤 것도 받아들인다. 손님을 들여 주인을 만들고 스스로 손님이 되어 공을 채운다. 밥은 찬을 들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밥은 너그럽다. 밥은 너그러운 주인이다. 밥은 제 맛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다른 반찬들의 맛을 살린다. 지우개처럼 입안을 씻어내고 새로운 반찬을 받아들인다. 조금쯤 짜고 조금쯤 매운 반찬들을 중화시키며 맛을 살린다. 국물 음식, 마른 음식, 매운 것과 짠 것, 딱딱한 것과 연한 것, 어떤 찬이라도 받아들인다. 찬 하나하나의 맛을 차별화시키면서 동시에 융합시킨다. 매운 음식을 먹었어도 밥이 들어가면 입안으은 언제든지 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이 되고, 그 텅 빈 공간에서 모든 음식이 제 맛 제 표정을 갖게 된다. 동시에 그 맛들을 합산한다.

반찬은 밥의 텅 빈 맛 때문에, 그리고 밥은 반찬의 맵고 짠 자극적인 맛 때문에 서로의 맛을 상승시킨다. 밥과 찬이 만들어내는 맛은, 객과 주인이 함께 어울리는 어우러짐의 맛이다. 그것이 한국의 맛이고 한국의 멋이다. 들에 나는 곤드레를 넣으면 곤드레 밥, 집에서 키운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 밥, 바다에 나는 굴이나 홍합을 넣으면 굴밥, 홍합밥이다. 정월대보름이면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으로 오곡밥을 지어 서로 나누어 먹고, 역모를 미리 알게 해준 까마귀를 기리며 검은 약밥을 지어먹는다. 자연과 어우러지고 바다와 어우러지는, 밥은 어우러짐의 미덕을 가졌다

 

밥은 귀하다

밥은 들어가는 목구멍에 따라 수라가 되고 진지가 되고 입시(하인들이 먹는 밥)가 되고 메(귀신이 먹는 밥)가 된다. 국이나 물 없이 먹는 밥은 강다짐, 반찬 없이 먹는 밥은 매나니, 남이 먹다 남긴 밥은 대궁밥, 드난살이에 얻어먹는 밥은 드난밥, 김을 맬 때 집에서 가져다 먹는 밥은 기승밥. 눌어붙은 누룽지는 눌은밥, 솥훑이 혹은 가마치라고 불렀다. 밥을 먹으며 쌀을 생각한다. 쌀 한 톨 되기까지 농부의 손을 생각한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했다. 촉촉한 봄비에 농부는 풍년을 미리 점친다. 논의 흙 삶는 농부의 나래질이 가볍기만 하다. 찔레꽃머리 넘어 비 내리고 물 가득 찬 무논을 농부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못자리 만들어 볍씨를 치고 모를 쪄서 앙구고, 못춤을 나르는 손들이 바쁘다. 모내기 끝낸 망종의 무논에 연둣빛 물그림자 일렁인다. 농군들은 세벌 김매기를 마치고 나서야 날을 받아 호미씻이를 할 수 있다. 음식을 장만하여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 풍작을 점친다. 큰 더위 큰 장마 태풍을 견디고 나서야 단단한 쌀 한 톨 얻을 수 있으니 여든여덟 번 힘든 일을 거쳐야 쌀이 나온다는 쌀[米]의 뜻이 결코 허풍은 아닌 게다. 

 

사람은 밥힘으로 산다.

죽어서도 염을 하기 전에 반함을 하여 저승까지 갈 때 먹을 식량을 입에 담는다. 새해 초나 굿판에서는 쌀점을 친다. 무당은 쌀 무더기에서 쌀을 한 움큼 쥐어 상 위에 던져 그 숫자를 세어 길흉을 판정한다. 태풍을 만난 어부들은 배 안에 쌀을 뿌려 기도를 드리고 여인네들은 신주단지에 새 쌀을 담아 안방의 천장 밑에 올려놓고 초하루와 보름에 절을 하며 풍년과 집안의 안녕을 빌었다. 쌀은 귀하다. 그래서 먹다 남은 밥찌꺼기나 누룽지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리고 가루를 낸 것이 미수다. 여름철에 시원하게 타 먹으면 갈증해소 음료이자 식사대용식이 될 터이다. 남은 밥을 발효시켜 식혜를 만들 수도 있다. 단맛이 도는 식혜는 살얼음을 얼려 겨울철 별미가 될 터이다

 

밥은 그리움이다

물 건너 오랜 여행을 하다 돌아온 이는 밥상머리 앉자마자 흰 밥 한 술 크게 떠 입안에 넣는다. 맛이라는 게 그저 혀에서 느끼는 것이겠지만, 맨밥 한 술 뜨고 나서야 비로소 제 땅에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밍밍하다 싶을 만큼 단순한 밥맛이,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흰 쌀밥의 맛이, 어쩌면 그리도 집요하게 그리웠는지. 오래 기다려온 연인의 몸 한 끝에 손을 댄 사람처럼 조심스러운가 하면, 금방이라도 연인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갈 사람처럼 성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밥 한그릇 비운 이는 그제야 부엌에 밴 밥냄새를 맡는다. 장작불이 타오르던 아궁이를 보고, 솥뚜껑을 열 때 뜨거운 김이 확 끼치면서 나던 구수한 밥냄새를 맡는다. 옛 여인들이 조왕신을 모시던, 한밤 아녀자들이 몰래 몸을 씻기도 하던, 때론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달래기도 하던 그 부엌을 본다. 그 부엌에서 밥을 안치며 온기를 전해주던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먼 곳에 있었어도 탈 없이 잘 있을 수 있었던 힘을, 그 깊은 그리움을 밥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깨닫는 것이다. 귀하디귀한 마음을, 그 온기를, 그 힘을 믿는 것이다

 

출처 : CJ 사외보 생활속의 이야기 2005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