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을 때/ 이원규
나 없이 당신이 죽을 때
하필이면 그 순간에
서망 비애의 바닷가를 어슬렁거리거나
지리산 길벗들과 술추렴하거나
딴 여자 생각하며 키득거릴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당신이 먼저 죽을 때
첫날밤처럼 나란히 누워
거친 숨결이 낙엽처럼 다 식을 때까지
부고도 없이 둘만의 아침이 올 때까지
당신의 차고도 낯선 왼손을 놓지 않겠지만
행여 내가 먼저 죽을 때
당신은 섬진강 윤슬을 무연히 바라보거나
벚나무 아래 꽃잎 하나 스치듯
지난 생 남은 생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앞머리 쓸어넘기며 힐끗 돌아보기를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아 꽃은 피고
당신이 죽고 내가 살아 꽃이 지느니
*이원규 : 1984 <월간문학> 1089 <실천문학> 등단.
시집 <달빛을 깨물다>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外
육필 시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신동엽문학상, 평화인권문학상.
[출처] 당신이 죽을 때/ 이원규|작성자 Dream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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