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산책

배재학원

Jay.B.Lee 2019. 1. 9. 05:17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년 2월 6일 ~ 1902년 6월 11일)는 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미국 감리교(북감리회) 선교사이다.

그는 선교사가 설립한 최초의 근대사학인 배재학당(현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을(를) 세운 설립자이며, 구한말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자녀들인 아들 헨리 도지 아펜젤러는 미국에서 공부한 뒤 아버지를 이어 배재학당에 교장으로 취임해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했고,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역시 이화학당(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1858년 펜실베이니아주 손더튼에서 태어났으며, 프랭클린 앤 마셜 칼리지(Franklin and Marshall College)를 1882년 졸업하였다. 감리교 신학교인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으며, 1884년 미감리교 선교 위원회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88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 조선에 선교사로 입국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함께 인천으로 입국한 아펜젤러는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하고 내리교회 창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신학문에 뜻을 둔 청년을 모아 교육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고종 황제가 이름과 현판을 하사한 선교사가 설립한 최초의 서양식 학교, 배재학당(현 배재고등학교)이다.

한국에 성서 번역부가 생기자 언더우드·게일 등과 함께 마가의젼한복음셔언해, 보라달로마인셔 등 성서의 국역에 참여하였다. 교육 방식을 암기보다는 판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고치는 데 공헌하였다.

1902년 44세가 되던 해에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하여 전라남도 목포로 가던 일본배인 구마가와마루와 같은 회사소속인 기소가와마루가 어청도 서북방 2-3해리 지역에서 충돌해 구마가와마루가 침몰하면서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 익사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있는 아펜젤러의 묘지는 가묘이다. 시신은 아직 여학생과 조사 조한규와 함께 어청도 바다 밑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들인 H. D.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Dodge, 亞扁薛羅2世, 1889~1953)도 역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위키백과

조각이 외국인 작가처럼 보이나 한국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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