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먹은 김밥 .
안사람이 갑자기 저녁 식사로 김밥을 싼다고 전한다.
요즘 안사람에게서 김밥을 먹기는 힘들다.
전에는 안사람이 외손자를 돌보면서 손자가 좋아하는 김밥을 수시로 싸주곤 했다.
어쩌다 김밥을 만든다 점심때 부르면 3.5K 거리를 버스 타고 가서 먹고 오곤 했다.
나중엔 버스 타고 오가는 것도 귀찮아 그만두었다
(차는 안사람이 딸네집 출퇴근 용으로 사용했다)
그 후 안사람은 집에 올 때 가끔 한 줄을 남겨 가지고 오곤 했다.
지금은 거의 10년의 손자 도우미를 끝내고 일 년 반이 지나며 안사람은 김밥을 잊고 살았다.
김밥을 처음 기억하는 건 한국전쟁 종전 다음 해인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때다.
가난하던 시절이기에 김밥 한 줄을 종이에 둘둘 싸 온 친구, 알루미늄 통에 넣어온 친구
김과 쌀 살 돈이 없던 아이들은 고구마를 삶아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단무지, 시금치, 달걀지단을 넣어 말은 김밥은 최고의 성찬이었다.
개중엔 무장아찌만을 넣어 만든 김밥을 가지고 온 친구도 있었다.
어머니는 김밥을 먹기 좋게 삼등분해서 싸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그냥 달랑 김밥 한 줄이면 그만이었다.
그걸 한입 물어 잡아당긴 순간 자르지 않고 넣은 시금치가 입에 매달려 웃음을 자아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조금 잘라주지 않고 보낸 엄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밥 담을 마땅한 용기가 없던 시대,
대부분의 부엌 식칼은 김밥을 썰기에 너무 무뎠다.
아들을 위해 김밥을 몇 등분해 포장한다는 마음의 여유도 없던 시대였다.
김밥집에 가본 건 평생 열손가락 이내로 꼽을 정도다.
감밥이 맛있던 건 예약 후 제시간에 받아가서 픽업해야 하는 제주의 김밥집.
불에 구운 어묵 내음이 잘 어울리던 김밥이었다.
장안평 간 길에 유명하다는 김밥집을 찾아가 간 적이 있다.
단체 주문을 마감한다는 전화소리가 들리던 집이다
김밥 속은 꽃처럼 화려하나 맛은 평범했다
보통 김밥집의 꼬들 꼬들한 밥보다 약간 질게 한 김밥을 좋아한다.
일본 초밥처럼 아보카도를 넣은 김밥을 좋아하지만 말하기 어려워 언감 생심이다
시금치, 쿠팡에서 산 제주당근(엄청 달다 ), 계란, 단무지와 특히 하게도 안사람은 잘게 부수어서 나온 요리용 베이컨을 사용했다.
"창작 김밥"이라기보다 딸이 주었다는 식재료 없애기 일환이다.
일본식 미소국이나 된장국이 없이도 맛있게 먹은 저녁 김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