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 전망대와 카페 낙타
바람이 불고 선선한 여름날 동대문 채석장 낙타 전망대에 가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방문 예정 리스트에 두었던 장소로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어 왔던 곳이다.
그곳에 가면 어떤 전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궁금해 혼자 답사해 보기로 했다.
나중에 몇사람 안내하여 함께 와야할 곳이다.
대중교통이라면 동대문 역에서 마을버스(03)를 타고 가면 되나 버스 정류장 찾기가 어렵다.
우선 도보도 올라간 다음 내려올 때 마을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4호선 동대문 역에서 하차 동대문을 한 바퀴 돌아 언덕길을 오르기로 했다.
이 길 이름이 창신단길이 아닌 그냥 카페 이름이다.
창신동 비탈진 길을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
창신동은 박원순 시장 재임시 도시 재생 사업으로 문제가 되었던 지역이다.
올라가며 간간이 보이는 작은 미싱 가게들.
동대문 시장 의류 제조업의 숨은 조력자들이다.
창신동 재개발 추친위원회.
박원순의 "도시 재생사업 계획으로 지연되었던 재개발.
조속히 재개발되어야 할 곳임은 분명하다.
뭐든지 예술학교-대안 학교다
"우물집"
종로구 창신동 611-50
우물집-언덕 위 마을버스 종점에 가깝다
검색해 보니 <고급 한식집>이다.
근처에 단종비 정순왕후 송 씨가 궁에서 쫓겨 나후 생계를 위해 비단을 염색했던 "자주동샘"이 있어 "우물집"으로 지은 것 같다
낙산 삼거리.
혜화역에서 낙산 공원을 거쳐 성곽 밖으로 나오면 마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낙타 전망대를 둘러보고 혜화문으로 걷거나
동대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와 도성 성곽길을 따라 혜화문으로 걷기 좋은 산책 코스다.
마을버스 노선도
서울 <여담제>는 "여성 역사 공유 공간"으로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가 2023. 년 10월 31일 문을 닫았다
박원순 시장 (2020.7월 사망) 재임 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 위탁 종합 성과 평가에서 점수가 낮아 종료되었다.
이 건물은 단종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던 원각사 기둥과 대문을 살려 개조했던 곳이다
더 이상 활용되지 못하고 건물이 사장되어 버렸다.
낙산 삼거리에서 은행나무 어린이집이 보이는 길이 카페 "데르트르"와 "낙타 전망대"가는 길이다.
시내 조망을 할 수 있는 중국음식점.
네이버에 검색이 되지 않은 이상한 장식으로 꾸며진 음식점이다.
드디어 도착한 낙타 전망대
주소; 종로구 낙산 5길 51
(창신역 1번 출구에서 700미터)
전망대는 엘리베이터로 카페를 거쳐 올라가거나 뒤쪽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면 된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본 풍경
중앙 부근이 용마산이다
2층은 카페 겸 갤러리로 " 창신 숭인 도시 재생 협동 조합"에서 위탁받아 운영한다고 한다.
2층 카페 내부. 갤러리로 이용가능하게 만들었다.
내 눈에 너무 조악스럽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카페 라테.
5천 원.
민간에서 제안하여 지은 낙타 전망대라며 조합에서 위탁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조합에서 교대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상근 하다는 카페.
위탁받은 건물에서 영업하며 커피 가격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커피 원두도 좋지 않아 커피맛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없다.
친절함과 좋은 전망도 커피맛을 상쇄하긴 어렵다.
나중에 공정무역에서 수입한 커피를 사용한다는 걸 알았다.
무조건 네편이야 하고 남에게 잘해주었는지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언뜻 보면 좋은 말 같아도 무조건 네편이라는 말은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카페에서 나가면 옥상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다.
창을 통해 보기 보담 옥상에서 사방을 둘러보기에 적합하다
창신동 저 아래 "백남준 기념관"이 있어 다음 기회에 둘러볼 생각이다.
옥상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올 수 있고 내려갈 수 있게 된 시설이다.
그러나 옥상 엘리베이터 입구를 막아놓고 봉쇄했다.
옥상까지 운행하지 않은 이유를 추측해 보며 씁쓰레한 기분이다.
(주말에는 카페를 거치않고 옥상에 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남산 방향. 왼편에 동대문 DDP 건물이 보인다.
길아래 건너 보이는 카페"데르트르"건물(저녁 노을을 즐기기 적당해선지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반까지 영업)
다음 방문 시 밑그림을 그려본다
창신역-백남준기념관-낙타 전망대-카페 데르트르 에서 휴식-혜화문
저녁 야경을 보아도 좋겠다.
일본 강점기시 사용했던 숭인동 채석장